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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공화국 선교 현황 보고 (강명관 선교사) / Relatório do Trabalho Missionário na República Dominicana (Missionário Kang Myung-G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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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카공화국 현지에서 카카오톡으로 전해온 선교 소식을 정리해 전합니다. 사진은 일부 캡춰해서 올립니다. 2026년 새해 도미니카공화국 선교보고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예레미야 애가 5:21) 2026년, 또 하나의 아름다운 새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기쁨이 선교 동역자 가정과 교회 위에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도미니카 중미선교센터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늘 사랑과 기도로 동행해 주시는 모든 선교 동역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1. 교회 사역 2026년 새해를 맞아 특별히 청소년 4명으로 찬양팀을 구성 하여 함께 찬양하며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작은 시작이지만, 다음 세대를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감사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 사진 1 : 청소년 찬양팀과 함께한 예배 모습 2. 학교 사역 에덴학교는 1월 7일 , 기도와 찬양, 말씀으로 새 학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자라,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를 비롯한 중미 여러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성장하길 소망합니다. 3. 선교센터 사역 한국에서 방문한 청년들과 함께 선교센터 농장에 아보카도와 오렌지 나무 를 심었습니다. 3~5년 후 맺힐 열매가 많은 이들과 나눔의 기쁨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또한 선교센터 옥상에 **‘로뎀 쉼터 카페’**를 조성하고, 쉼과 회복의 상징인 로뎀나무 벽화를 그려 사역자와 방문자 모두에게 쉼과 회복의 공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이티 난민 쉼터 건축 현재 선교센터 내에 아이티 난민을 위한 쉼터 주택 을 건축 중입니다. 열악한 환경과 잦은 비로 공사는 더디지만, 기초 공사를 마치고 철골 구조를 세우는 단계까지 진행되었습니다. 특별히 아이티 난민들이 직접 공사에 참여하며, 스스로의 보금자리를 세워 가고 있습니...

Brasil, 50 anos de imigração – ㉓ o adiamento da decisão coletiva (F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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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3º Dia da Cultura Coreana. Com a participação da Associação Beneficente Coreana, a comunidade coreana já vinha atuando de forma conjunta no campo. O que falta agora não são eventos pontuais, mas uma estrutura que dê continuidade a essa força .  A comunidade coreana no Brasil possui estruturas, pessoas dedicadas e uma longa história de contribuição. No entanto, hoje enfrentamos um problema que já não pode ser explicado pela falta de boa vontade, mas sim pela falta de estrutura e decisão coletiva . A Associação Coreana possui um prédio, conhecido como Centro Comunitário Coreano. Contudo, esse espaço permanece praticamente sem uso há décadas. Localizado em uma região que deixou de fazer parte do cotidiano da comunidade, tornou-se um símbolo que perdeu sua função real. A necessidade de mudança é amplamente reconhecida, mas decisões continuam sendo adiadas. A Associação Beneficente Coreana também enfrenta dificuldades semelhantes. O prédio, originalmente uma fábrica de macar...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㉓ 결단을 미룬 공동체 (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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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제13회 한국문화의 날. 한인복지회를 포함해 한인사회는 이미 현장에서 함께 움직여 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이 힘을 지속시키는 구조다. 쓰이지 않는 한인회 건물, 감당 못 하는 복지회 건물 한인회에는 ‘한인회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그러나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아끌리마썽에 세워진 이 건물은 수십 년 동안 사실상 비어 있었고, 지금의 한인 생활권과도 완전히 멀어진 공간이 되었다. 한인회 이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브라질 한인은 없다. 그럼에도 왜 아무 변화가 없었는가. 과거의 공로와 정서가 판단을 막았고, 그 사이 한인회는 탄탄한 중심 기능을 갖지 못했다. 지금도 한인회 회의는 회관이 아닌 식당이나 임시 공간에서 열린다. 한인회 건물은 있지만, 한인회는 그 안에 없다. 상징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새로운 한인들과 젊은 세대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결단을 미뤄 왔다. 한인복지회도 다르지 않다. 국수공장이던 대형 건물을 9년간 고쳐 사용해 왔지만, 노후한 구조는 끊임없는 보수비를 요구한다. 봉사 첫날 눈에 띄게 지저분했던 환경, 개인 비용으로 페인트와 커튼을 교체해야 했던 현실은 이 공간이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헌신으로 유지되어 왔음 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제는 분명히 한계를 넘었다. 자원은 있다, 그러나 묶이지 않았다 한인회에는 건물이 있고, 한인복지회에는 건물과 함께 OSCIP라는 강력한 제도가 있으며, 노인회에는 건립을 위해 비축된 자금이 있다. 우리는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따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한인복지회는 기업 후원을 세금 공제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공간과 구조가 분산되어 실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자원도 흩어질 수밖에 없다. 의료봉사는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를 움직이지 못한다 의료봉...

Brasil, 50 anos de imigração – ㉒ Histórias esquecidas: entre recursos e serviço voluntá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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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ois de publicar, ontem, as histórias de duas associações de idosos, eu pretendia encerrar esta série com dois textos finais: um de conclusão e outro com propostas de encaminhamento. No entanto, ao reler materiais antigos e organizar minhas anotações, percebi que havia deixado passar algumas histórias importantes. Por isso, resolvi registrá-las aqui. Há cerca de 15 anos, em meio a tantos trabalhos e compromissos, as lembranças sobre o que veio primeiro, o que foi intermediário e o que veio depois acabaram se misturando. Somente agora, revisitando documentos antigos, consegui compreender com mais clareza o fluxo daqueles acontecimentos. 1. O motivo de ter entrado na Associação Coreana – a questão dos recursos O principal motivo pelo qual fui convidado a participar da Associação Coreana do Brasil foi a necessidade de fortalecer a base financeira . Naquele período, eu já refletia há muito tempo sobre duas questões: como ajudar jovens coreanos a manterem o orgulho de sua ...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㉒ 잊고 있던 이야기들, 재정과 봉사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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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두 노인회의 이야기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의 글과 해결방안의 글 두 편을 올리며 끝을 맺으려 했었다. 그런데 문득, 잊고 지나간 이야기 몇 가지가 있어 이렇게 정리해 올려본다. 15년 전에는 일을 하면서 무엇이 시작이었고, 무엇이 중간이며, 무엇이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예전 자료들을 다시 살펴보며 그 흐름을 비교적 정확히 알게 되었다. 1. 한인회에 들어가게 된 이유 – 재정 확보 서주일 회장이 나를 한인회로 불러들인 가장 큰 목적은 재정 확보와 관련된 일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브라질에 사는 한인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긍지를 가질 수 있을지, 또 어떤 방식으로 노인분들을 위한 봉사를 자발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 가지 고민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재정 확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고, 그 방법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나를 한인회에 앉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효과를 보았고, 많은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1년 치 한인회비를 납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년간 약 500명 × 350헤알 × 2 = 약 350,000헤알) 이때 처음으로, ‘의지만 있으면 한인사회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2. 한인회보와 사이트들,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확장 이후 한인회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대인 봉사단체 Unibes를 취재하게 되었고, 그들의 활동이 인상 깊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사람이 “사이트를 만들어 주겠다”고 나섰다. 며칠 뒤, 실제로 사이트 하나가 만들어졌고 그 일을 계기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한인회 재정을 위한 ‘한인지정업소’ 프로그램, 매달 발간해야 했던 한인회보, 한인회 홈페이지, 꼬레아닷컴, 양지노인회 블로그와 어머니 합창단 블로그까지. 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미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인업소...

Brasil, 50 anos de imigração – ㉑ Duas associações de idosos no Bom Ret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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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em gerada por IA Um registro feito com cautela, mas que precisava ser deixado Na verdade, escrever sobre associações de idosos é sempre algo delicado. Os idosos não são pessoas comuns… só quem já passou por isso entende. (risos) Mesmo assim, sei que, depois de escrever, consigo dar continuidade à história. Por isso, hoje resolvi publicar este texto. Na época em que Seo Ju-il era presidente da Associação Coreana, existia no Bom Retiro um local chamado Associação de Idosos Yangji . Para reunir material para o boletim da associação e registrar as atividades de entidades coreanas, visitei o apartamento 11, nº 77 da Rua Correia de Melo. “Uma sala pequena…” – a Associação Yangji e o tempo do registro A Associação Yangji ficava em um local com escadas. Para os idosos, não eram poucas escadas para subir. Ao chegar lá em cima, havia uma pequena sala, dois quartos pequenos e uma cozinha pequena. Dentro, estavam cerca de 15 a 20 idosos, todos almoçando juntos. O senhor Yu Gy...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㉑ 조심스럽게 남기는 기록, 봉헤찌로의 두 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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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생성 이미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남겨야 할 이야기 사실 노인회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어르신들이 다 보통 분들이 아니시기에… 겪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쓰고 나면 그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기에 오늘은 이 글을 올려봅니다. 서주일 한인회장이 한인회에 있을 당시, 봉헤찌로에는 양지노인회 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한인회보 안에 넣을 기사와 함께 한인 단체에 대한 동정을 알기 위해 Rua Correia de Melo 77번지 아파트 11호를 방문했습니다. “조그만 살라 하나에…” 양지노인회와 기록의 시간 방문한 양지노인회는 계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오르내리기에는 조금 많아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니, 조그만 살라 하나, 조그만 방 두 개, 조그만 부엌이 나옵니다. 그 안에 15명~20명 가량의 어르신들이 계셨고, 모두 식사 중이셨습니다. 양지노인회를 맡고 계신 유경렬 어르신은 등록된 분들이 43명이고, 매일 20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점심과 간식을 드시며 여가를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정목사님의 부인이신 이상례 사모님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식사를 챙기시고, 간호사이셔서 아프신 곳도 봐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토요일에는 홍선영이라는 분이 하루를 도우신다고도 하셨고요. 한인회가 회보를 만든다는 소식이 양지노인회 유회장님 귀에 들어갔나 봅니다. “우리도 회보를 만들겠다”며 비용을 알아봐 달라고 하셨고, 비용을 알려드리자 이번에는 회보를 만들겠다고 하시며 그 안에 좋은 내용의 글과 함께 저에게 한방 칼럼도 써 달라고 하십니다. 아… 이 무슨 날벼락같은 일이 ㅜ-ㅠ 유회장님 성격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ㅎㅎ 이분이 마음먹으면 일이 커지는 스타일이라 솔직히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유회장님은 제가 존경하는 김학종 목사님의 오랜 친구분이셨고, 개인적으로도 오래 알고 지내온 분이셨습니다. 다행히 저와는 사돈 ...

How Far Can We Apply AI? — Reexamining the Bible Through Calc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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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mage was generated by AI. 1. A glimpse of the AI era from the treatment room Just a moment ago, a 39-year-old man finished his wrist treatment and left. During treatments, I often talk with younger people. I am curious about how far their thinking has come, and how they are living in this era— because their reality will soon become ours. By the end of the conversation, the topic turned to Artificial Intelligence (AI). He explained that the fashion industry now actively uses AI. Instead of human models, clothes are displayed on AI-generated models . There is no need for model fees, photographers, or studios. Time, labor, and costs are dramatically reduced. He said the difference is so large that it cannot even be compared. 2. Those who adapt, and those who fall behind But is everyone keeping up this way? Younger people adapt relatively easily, while older generations often cannot even begin without help from their children. Even people of his own age, he said, are...

Brasil, 50 anos de imigração – ⑳ A Associação Beneficente Coreana: o serviço voluntário e os limites da estru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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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tes de começar Este texto não tem como objetivo avaliar ou criticar a Associação Beneficente Coreana. Trata-se de um relato pessoal , baseado em mais de 15 anos de convivência, participação e observação direta. As reflexões sobre possíveis soluções serão apresentadas em um próximo texto. Aqui, procuro registrar apenas os fatos e a realidade vivida , sem julgamentos ou conclusões definitivas. Fachada do prédio da Associação Beneficente Coreana, fotografada em 2010 – Rua do Hipódromo, Brás Um envolvimento que começou por acaso Meu contato com a Associação Beneficente Coreana começou quando, de forma quase forçada, fui incluído como membro da diretoria. Naquele momento, a ideia de publicar um boletim comunitário existia, mas os custos impediam o avanço. Foi então que, quase sem pensar, eu disse: “Então nós mesmos podemos fazer.” Essa frase simples acabou se tornando o início de uma grande responsabilidade. Hoje, olhando para trás, considero uma das grandes imprudênci...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⑳ 한인복지회에서 본 봉사와 구조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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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을 시작하며 이 글은 한인복지회를 평가하거나 비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15년 이상 직접 관여하며 보고 겪은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개인적 증언이며, 해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판단이나 결론보다, 사실과 체감한 현실만을 담고자 한다. 2010년 촬영한 한인복지회 건물 외관 – Rua Hipódromo, Brás 우연처럼 시작된 한인복지회와의 인연 한인복지회를 알게 된 것은 서주일 회장이 막무가내로 나를 임원으로 만들면서부터였다. 한인회보를 만들고 싶지만 제작 비용 문제로 주춤하던 시점에 “ 그냥 우리가 만들면 되죠 ”라고 했던 나의 말 한마디가 결국 일을 떠맡게 된 시작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내 인생의 큰 실수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생각과 말은 반드시 시간을 두고 해야 한다는 것을 , 그 후에야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한의원을 운영하며 매달 한인회보를 제작하는 일은 신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가 수십 배 더 컸다. 임원 중 절반은 이메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각종 자료를 직접 종이로 받아 정리해야 했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지금도 서주일 박사는 그 시기 내 상황이 어땠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정신없이 바빴으니까. 밥을 사도 수십 번은 사야 할 상황이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안 산 걸 보면, 역시 몰랐던 게다. (웃음) 한인복지회의 모습과 시간이 남긴 현실 한인회보를 채우기 위해 방문한 곳 중 하나가 한인복지회였다. 2010년 9월 25일, 어린이날 행사가 함께 열리던 날이었고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의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기록을 정리해 보면, 한인복지회는 Rua Hipodromo, 125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김정한 씨가 국수공장 매입 후, 전면 500㎡(10m × 50m) 규모의 건물을 기증했고 주성건 씨가 9년에 걸친 개조를 통해 총 건축면적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