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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sil, 50 anos de imigração – ⑲ O Consulado e o que ficou da escolha de uma pess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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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o falar da história da imigração coreana no Brasil, é impossível deixar de mencionar o Consulado. Há quase 60 anos, desde o estabelecimento das relações diplomáticas entre a Coreia e o Brasil, o Consulado esteve sempre ali, acompanhando a vida dos imigrantes, com momentos de apoio, mas também de frustração. As primeiras lembranças e as mudanças ao longo do tempo Nas primeiras décadas da imigração, a imagem do Consulado não era positiva. Muitos coreanos comentavam que, após uma visita, voltavam para casa aborrecidos. Alguns, que chegaram ainda crianças, lembram-se até hoje de terem sido tratados com frieza. Hoje, olhando para trás, fica claro que o problema não estava exatamente nos diplomatas, mas muitas vezes no atendimento local e na falta de preparo institucional daquela época. Cerca de 30 anos atrás, essa situação começou a mudar. O atendimento tornou-se mais cordial e os serviços, aos poucos, melhoraram. Ainda assim, a percepção do Consulado sempre variou c...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⑲ 총영사관, 한 사람의 선택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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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이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총영사관 브라질 이민사를 이야기할 때 총영사관은 빠질 수 없는 존재다. 한·브라질 외교관계 수립 이후 거의 60년 가까이 총영사관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이민자들의 삶과 함께 기쁨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 준 공간이기도 했다. 이민 초기의 기억, 그리고 변화 이민 초기, 총영사관에 대한 기억은 솔직히 좋지 않았다. 한두 차례 방문했던 당시의 기억 속 총영사관은 ‘불친절’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를 만큼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영사관에 다녀오면 기분이 상했다는 교민들의 이야기도 흔했다. 지금 돌아보면 영사들이라기보다는 현지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의 응대 문제였고, 이는 결국 조직 차원의 교육과 시스템 부족에서 비롯된 일이었을 것이다. 약 30년 전부터 총영사관의 분위기는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교민들을 대하는 태도도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고, 전반적인 서비스 역시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부임하는 총영사에 따라 여전히 차이가 있었다는 점도 사실이다. 같은 한민족, 다른 거리감 2000년 이후 삼성, LG 등 한국 기업 주재원 가족들을 치료하며 의외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교포들을 조심하라”는 지침을 받고 왔다는 것이다. 브라질 교포들은 대체로 정이 많고 친절한 편인데, 서로를 경계하며 거리를 두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민자, 공관원, 주재원 모두 같은 한민족으로 해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다른 시선으로 살아가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총영사관의 역할과 현실 상파울루 파울리스타에 위치한 주브라질 한국 총영사관이 입주한 건물. 총영사관의 공식 임무는 대한민국 국민 보호, 영사 서비스 제공, 기업 진출 지원과 문화 홍보, 한인사회 지원이다. 그러나 실제로 브라질에서는 오랫동안 한인 동포 지원이 크게 체감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초기 한인사회가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었고 그 관행이 굳어졌기 때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