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의 황열병 역사와 Oswaldo Cruz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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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황열병 역사와 Oswaldo Cruz 의사의 눈물나는 노력 ※ 이 글은 São Paulo주에서 황열병이 팬데믹 수준까지 갔던 2017년 , 여러 자료를 참고해 개인적으로 정리해 두었던 기록입니다. ※ AI 생성 이미지  이 이미지는 **Oswaldo Cruz**를 중심으로 그가 황열병과 싸우던 시대의 장면들을 한 화면에 겹쳐 배치한 역사 일러스트입니다.  1. 현미경의 등장과 황열병 논쟁의 시작 1850년경 현미경의 발명으로 미생물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 과학자 Louis Pasteur 는 세상에 박테리아가 존재함을 밝혔습니다. 1880년 무렵부터 황열병의 원인 역시 미생물일 가능성 이 제기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황열병은 전염병이다 황열병은 전염병이 아니다 라는 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2. 무시당한 최초의 발견 – Finlay의 모기 가설 황열병과 관련된 최초의 국제 보고서 는 쿠바 의사 Juan Carlos Finlay 가 작성했습니다. 1881년 그는 Havana에서 황열병 환자와 감염자 사이에 어떤 매개체가 존재하며 , 그 매개체는 사람 자체와는 무관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획기적인 가설은 당시 과학계와 사회로부터 철저히 무시 당합니다. 3. 브라질 Jaú시, 뜻밖의 증거 1896년, São Paulo주 Jaú시는 황열병으로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당시 저명한 의사였던 Emílio Ribas 는 황열병이 전염병이라는 가정하에, 환자가 가득한 병원에 고아들을 격리시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은 병에 걸리지 않았고 이미 아픈 아이들마저 회복되었습니다 이는 사람 간 전염이 아님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 였습니다. 4. 모기가 원인이라는 확신 19세기 말, 황열병의 감염 경로가 모기나 물 일 수 있다는 의심이 커졌고, Finlay는 물이나 환경이 아닌 황열병 환자 자체 에서 연구를 시작합니다. 1878년 “모기가 ...

💦 [건강 정보] 황열병과 예방 접종 그리고 주의사항

  🏥 🚑   [건강 정보]  황열병과 예방 접종 그리고 주의사항 ( 2017.01.30)  최근 브라질 Minas Gerais주에서 황열병 감염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고 사망자가 많아지면서 황열병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쌍빠울로(Sao Paulo)주까지 빨리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 이 황열병에 관한 정보를 추려보았습니다. 👉  먼저, 현재 브라질 Minas주에서 번지고 있는 황열병은 야생 황열병입니다. 🚩 황열병은 야생 황열병과 도시 황열병으로 구분을 하는데...  야생 황열병 은 원숭이로 인해 감염된 모기((Haemagogus, Sabethes)로 인해 증상이 발생하고...  도시 황열병 은 우리가 사는 인근의 모기(Aedes aegypti)로 인해 발병되는데, 도시 황열병은 브라질에서 1942년 이후에 발견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브라질 전 지역에서 Aedes aegypti 모기로 인한 댕기나 지카, 쉬꿍꾼냐 바이러스가 생겨난 것으로 보아 도시 황열병도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 황열병은 댕기 바이러스나 지카, 쉬꿍꾼냐 바이러스처럼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데 치사율은 훨씬 더 높다. ▶ 황열병의 잠복기 증상은 (incubation period), 급성기(acute phase), 독성기(toxic phase)로 나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에 물리고 3~6일 정도의 잠복기가 지나면 급성기로 이어 지는데 급성기에는 발열과 근육통, 홍조, 오한, 두통, 식욕상실, 구역,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3~4일간의 급성기가 지나면 보통 증상이 사라지지만, 환자의 15% 정도는 독성기로 접어들게 된다.  독성기의 환자는 열이 다시 발생하며 급격히 황달(jaundice), 복통, 구토 등의 증세를 보인다. 또한 입, 코, 눈, 위장관 등에서 출혈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간 기능이 저하되어 간에서 혈액응고인자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한가운데서] 브라질서 혼자살기 -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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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토요일(11일) 70정도 되시는 여성 한 분이 내원하셨다.  위도 좋지 않고 허리와 다리 그리고 여기 저기가 다 아프시다고 하신다. 치료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들었더니 얼마 전 미국에 사는 딸이 아기를 낳아 3개월 동안 도와주시고 오셨다 한다. 그런데 3개월 동안 하루종일 보았던 그 첫 손주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기운도 없고 맥이 탁 풀리시고 아프신 것이라 한다.  이런??? 나도 오늘(토요일) 내 대빵되시는 마눌님을 미국에 똑같은 이유로 3개월을 보내는데... 혹시라도 저렇게 되서 돌아오면 안되는데 은근 걱정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들 딸 보다 손주가 더 이쁘다고 하던데... 나도 그리 될래나??아무쪼록 그런 상사병이 생기지 않고 돌아오기를 바라며 공항에 바래다 주고 왔다.      2023년 2월 12일, 아침 5시 40분, 이 시간 Ibirapuera 공원은 한적하다.   그래서 혼자됐다. 나는 결혼 하자마자 집안의 이런 저런 이유로 때론 1개월, 2개월, 3개월, 6개월까지도 떨어져 있었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부모님이 있으셨는데 지금은 부모님도, 자녀도 ㅎㅎ  이제는 마눌도 갔다. 그래서 혼자살기 1일째다.   오늘 일요일(12일), 챙겨주던 마눌님이 없으시니 일이 바쁘다... - 5시에 일어나 Ibirapuera 공원을 가서 3바퀴를 돌았다. 혼자있으니 건강은 더 챙겨야 한다. - 주중에는 시간이 안되 오늘 일요일은 필요하신 분들을 왕진한다. - Feira 가서 1주일 동안 먹을 야채와 과일을 사고 먹기 편하게 준비해 놓고 찍은 사진을 가족방에 올렸다. 혼자 있을 때 잘 먹어야 하는데, 살도 좀 빼야 싶다. 기회다! 멜렁은 너무 커서, 조금 잘라놓고 나머지는 쥬스를 만들어 냉동고에 넣어야지... 임신한 딸래미가 보더니 자신의 냉장고라며 사진을 올려놓고 자신의 불룩 나온 배 사진을 보내주었다.  ㅎㅎ 딸래미는 늘 상 배를 찍어 보내준다. 아...

💢 [긴급 알림] 우리 한인 미용실, 미장원 등에서 조심해야 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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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와 사용금지  브라질 보건감시기관 Anvisa가 오늘 금요일(10일) 머리 스타일을 위한 모든 종류의 연고(크림)의 판매와 사용을 중지시켰습니다.  이 조치가 시행되는 동안 이러한 종류의 제품은 판매될 수 없으며 소비자와 미용 전문가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Pernambuco 주에서 수 백명의 사람들이 이런 유형의 제품을 사용하고 일시적 실명 또는 눈 화상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인 미용실도 이 상황을 잘 아셔서 머리에 바르는 크림 종류는 치워 두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판매하거나 비취해 두었다가 보건부로 부터 큰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 # 예전에 여러 미용실들이 유사한 문제로 인해 고발 또는 Fiscal 이 들어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습니다.   👉 기사 내용 보기 ▷   https://jovempan.com.br/noticias/brasil/apos-casos-de-cegueira-anvisa-proibe-venda-de-todas-as-pomadas-para-modelar-e-trancar-cabelos.html ▷   https://noticias.r7.com/saude/anvisa-recomenda-que-populacao-nao-use-pomadas-para-trancas-associadas-a-problemas-oculares-10022023 ▷   https://www.cnnbrasil.com.br/saude/anvisa-proibe-venda-de-pomadas-para-modelar-e-trancar-cabelos-apos-casos-de-perda-de-visao/

[삶의한가운데서] 1970년대 중반, 우리 한인사회를 조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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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브라질 한인들의 이민역사가 60년이 되었다 한다. 나도 브라질에 온지 햇수로는 48년이 되어가니 그 세월이 적은편은 아닌 것 같다.  오늘 토요일(4일) 내원하신 환자분 중 같은 76년도에 오신 여성 한 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당시 당시 이분께서(27살) 겪으신 어렵고 참담한 같은 일이.. 브라질 60년 이민역사에 한 부분을 차지했었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자 한다. 보통 이민 역사의 대부분이 초기 이민 상황만을 조명하기에 브라질 한인 이민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이런 흑역사의 시기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이런 나쁜일 가운데서도 훈훈한 이야기도 있기에 이 둘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브라질 이민 역사에서 70년대 중반은 브라질로 많은 이민자들이 왔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파라과이를 거쳐오는 경로로 당시는 이민자들이 이런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한 번도 예상치 못한 일로... 당시 많은 이들이 브라질에 도착하여 불안과 고통에 떨었습니다. 2가지 이야기를 따로 만들어 올려 드립니다.   ◈   [70년대]  나쁜 한인 이야기 https://koreabrazilnews.blogspot.com/2023/02/70.html ◈   [70년대]  좋은 한인 이야기 https://koreabrazilnews.blogspot.com/2023/02/70-76.html  내가 늘 아쉬워 하는 것은 브라질 60년 이민역사 속에 우리 한인들이 살아온 내용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부모들이 이민 초기에 어떠한 모습으로 살았으며 또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이런 대화를 통해 부모와 자녀간의 이해와 유대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 가야 하는데 우리는 이민의 고달픔속에서 이런 맥을 끊고 살아온 것 같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또 후세들에게 선배 이민자로써의 좋고 나쁜점을 알려서 이들로 하여금 ...

[70년대] 좋은 한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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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 올리는 좋은 한인 이야기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10년 전 부터 브라질의 이민 경로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던 중, 2015년 이선생님이라는 어르신과 대화를 하였는데 Ponta Porã에 사는 한국분이 이선생님이 브라질 국경을 넘을 때 돈 한 푼 안받고, 또 사례도 극구 거절하고 도와주셨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이런 좋은분도 계셨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당시 운영하던 [한브네트]에 올린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올린 후, 다음 날 이야기의  주인공되시는 분의 따님에게 연락을 받아 이분이 유정길님이셨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70년대]  좋은 한인 :  76년 이민 오신 유정길님(작고)  Ponta Porã 사셨던 유정길님 이야기..   1976년, 파라과이로 이민 가신 유선생님 가족은 다른 분들처럼 브라질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유선생님의 부친이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알몸으로 쫒겼던 안좋은 기억이 있어 브라질에서 자녀들을 데리고 영주권이 없이 살아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아 그냥 파라과이에 정착하셨는데 파라과이의 Asuncion(아순시온)은 기온이 너무 더워 시원하고 살기 나은 곳 Pedro Juan Caballero라는 도시로 이주하였다 한다. 몇 년이 지나 브라질 사면령을 통하여 브라질 영주권도 취득하였지만 Ponta Porã에 계속 거주하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사진 찍은 Veronica 님    유선생님의 따님 Veronica님은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한 3년동안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저의 방을 비우게 하고 그분들을 재우셨습니다.  파라과이에서 브라질로 넘어가시는 분들을 주말까지 재우고 먹이신...

[70년대] 나쁜 한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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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쁜 한인 : 76년 이민 오신 김XX님의 이야기   미스 Kim은 엄마와 오빠 식구들과 함께 파라과이를 거쳐 76년 브라질에 오셨다. 당시 미스 Kim은 27세의 아가씨였다. [설명] 해외 이민이 유행하던 70년대 중반, 브라질 직접 이민이 중단된 상태라 브라질 이민을 가기 위해서는 파라과이로 이민 수속을 하였다. 먼저 파라과이로 간후 브라질로 입국하여야 했는데 이런 사실은 사람들이 브라질 이민을 수속하고 비자를 발급받은 후에야 알게된다.  이민 수속 브로커들은 파라과이에 가서 브라질로 그냥 걸어들어가면 된다는 그런말을 하였는데 막상 도착해서는 그것이 밀입국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한국에서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기 싫었던 미스 Kim은 오빠의 강압(?)에 어쩔수 없이 이민을 떠났고 도착한 후 밀입국으로 영주권 없이 살아야 하는 현실을 알고 오빠 식구는 브라질 오자마자 6개월 후 스페인으로 재 이주했는데, 미스 Kim은 엄마와 같이 열심히 일을 하고 빨리 돈을 모아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으로 있었다 한다. (설명-1) 당시 브라질에 갓 이민 오신 분들은 대부분 봉재업과 자수(수놓는일)일을 하였다.  초기 이민자들이 농사일을 그만두고 도심지로 나와 의류업을 시작하였는데, 70년대 브라질로 밀입국한 한인들이 밖으로 외출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일이 빈번하여 브라질 영주권이 없었던 한인들은 밖으로 잘 나가지 못하고 봉재업을 하였다. 봉재업을 하는 한인들은 일을 할 때 창문을 꼭 닫고 일을 해야 했다. 혹시라도 누가 보고 고발을 할까봐 두려워..  때론 경찰이 떴다는 소문이 나면 어김없이 문을 닫아걸었다.  한인들의 실상을 아는 브라질 현지인들 중에서 한인들의 고통을 알고 도와주는 좋은 현지인도 많았다는 것을 후일 알게되었는데...  이런 가운데 김WB 이라는 한인남성은 영주권이 없는 한인들을 고발하여 돈을 챙겼다 한다. 💢 미스 Kim의 말로는 김WB이라는 백수 한인남성이 감옥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