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sil, 50 anos de imigração – ⑱ A igreja existia, mas o exemplo estava ausente

이미지
Um registro sobre a imigração coreana no Brasil e a igreja coreana Quando os coreanos deixam a Coreia do Sul e vivem no exterior, costumam apresentar um crescimento rápido, diferente de muitos outros povos. O Brasil não foi exceção. Aqui, o desenvolvimento da comunidade coreana foi particularmente marcante. No setor de confecções, então dominado por italianos, judeus e árabes, os coreanos se estabeleceram e cresceram em ritmo acelerado. Porém, nesse processo, surgiram também muitos conflitos com funcionários locais. No centro desse problema estavam o temperamento apressado típico dos coreanos e a barreira do idioma. Essa “pressa” vem do crescimento acelerado do pós-guerra? Ou de séculos de invasões estrangeiras, que exigiram constante vigilância e preparo? Ou seria algo ligado à própria natureza do povo? Essa é apenas uma reflexão pessoal sobre o caráter dos coreanos. De qualquer forma, a dificuldade de comunicação causada por essas características levou muitos brasileiros a enx...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⑱ 교회는 있었지만, 본은 비어 있었다

이미지
 브라질 이민 사회와 한인 교회에 대한 기록 우리나라 대한민국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면, 다른 민족과는 달리 비교적 빠른 성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브라질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한인들의 발전은 유독 두드러진 편이었다. 이태리인과 유대인, 아랍인이 주름잡던 브라질의 의류 상권에서 한인들은 빠른 속도로 정착하고 성장해 나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현지 종업원들과의 갈등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그 중심에는 한인 특유의 급한 성격과 언어의 장벽이 있었다. 이러한 ‘급함’은 전쟁 이후의 압축 성장에서 비롯된 것인지, 수천 년 외세 침략 속에서 늘 깨어 있어야 했던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의 문제인지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이는 개인적으로 한국인의 성향을 돌아보며 던져본 질문일 뿐이다. 다만 이러한 성향과 언어 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단절은 브라질 현지인들에게 “한인들은 돈 벌어서 떠날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남겼다. 실제로 많은 한인들이 수십 년의 삶 속에 미국으로 떠나거나 한국으로 역이민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영주권 문제와 치안이 컸지만, 현지인들이 그런 사정을 알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그 중심에는 늘 한인 교회가 있었다. 이민 초기 목회자들은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디딘 이유가 우리만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 땅의 아픈 이웃을 외면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신념 아래 교회를 세웠다. 내가 있던 교회는 상파울루에 있던 유명한 감옥소 Carandiru의 수감자들을 돌보는 사역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특정 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한인 교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을 돕던 당시의 모습이기도 했다. 연합교회와 한인교회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범지역을 떠나지 않으며 주변 현지인들을 돌보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과연 그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 수십 년간 많은 한...

Brasil, 50 anos de imigração – ⑰ Mais do que imigrantes: vivendo as dores da mesma sociedade

이미지
 — Em uma cidade difícil, os rastros deixados pelas pessoas 1. Jandira, a cerca de uma hora de São Paulo 2011, campo missionário em Jandira. Um registro do tempo vivido junto com as crianças. Jandira é uma cidade localizada a aproximadamente 40 km do centro de São Paulo, a cerca de uma hora de carro. Embora pequena, com pouco mais de 100 mil habitantes, é conhecida há muitos anos como uma região marcada pela violência, drogas e vulnerabilidade social. Em 2010, o assassinato do então prefeito eleito trouxe ainda mais notoriedade negativa à cidade. Muitos jovens crescem nesse ambiente, expostos desde cedo ao crime, às drogas e à falta de perspectivas. Foi nesse contexto que começaram os trabalhos missionários e sociais em Jandira. 2. Quando a realidade se impõe O missionário Im Hyun-jo foi enviado ao Brasil em 1997 e, em 1999, mudou-se com a família para Jandira. O trabalho começou no quintal de casa, com a plantação de uma igreja. Após o culto inaugural, veio o choqu...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⑰ 위험한 도시에서, 사람이 남긴 흔적

이미지
 1. 상파울루에서 한 시간, 쟌지라는 어떤 도시인가 2011년, 쟌지라 선교 현장. 당시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의 기록 쟌지라는 상파울루 중심에서 약 40km 떨어진 외곽 도시다. 차로 이동하면 한 시간 남짓 걸리지만,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범죄와 마약 문제로 악명이 높았던 지역 이다. 특히 2010년에는 현직 시장이 살해되는 사건 까지 발생하며 쟌지라는 ‘위험한 도시’라는 인식이 브라질 사회 전반에 각인되었다. 이 지역의 많은 청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범죄와 마약을 일상처럼 접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선교와 사회 사역을 시작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2. 출석 0명, 선교의 민낯 임현조 선교사님은 1997년 브라질로 파송되어 1999년 가족과 함께 Jandira 에 정착했다. 가정 뒷마당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예배를 드렸지만, 개척 예배 이후 곧바로 맞닥뜨린 현실은 ‘출석 0명’ 이었다. 선교를 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것이라는 기대는 이 도시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쟌지라는 그렇게 선교의 현실을 먼저 보여주었다. 3. 사람을 통해 열렸던 길 전환점은 뜻밖의 사람 을 통해 찾아왔다. 현지인 목공업자 Farias의 소개로 미국·캐나다 출신 선교사 부부와 동역하게 되면서 교회는 정착의 계기를 맞게 된다. 아더 목사는 6·25 전쟁 당시 한국에서 군 복무를 했고, 이후 전쟁 고아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교회를 세워온 인물이었다. 그 부부는 브라질에서도 수십 년간 빈민 지역 아이들에게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며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 주는 사역을 이어오고 있었다. 4. 고아원을 꿈꾸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다 임 선교사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아이들 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브라질의 현실은 한국과 전혀 달랐다. 한국은 6·25 전쟁 이후 수많은 고아가 생기며 ‘고아원’이라는 제도가 사회 안에 자리 잡았다. 반면 브라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고아원이 거의 없고,...

Brasil, 50 anos de imigração – ⑯ Onde as portas se abriram com um sorriso ― Pequeno Jesus

이미지
  23 de agosto de 2014, sábado à tarde – Visitando o Pequeno Jesus (Foto da irmã no Mirante do Apsan, Daegu – abril de 2024) Na tarde de sábado, 23 de agosto de 2014, visitei o Pequeno Jesus , localizado em Bom Retiro. Ao telefonar, quem me atendeu com um sorriso foi a irmã Jeong Mi-young, Teresa (Tereza) , que havia chegado recentemente à comunidade. “Pode vir quando quiser.” Essa frase simples soou, para mim, ao mesmo tempo estranha e profundamente acolhedora. E havia um motivo para isso. ❖ Um lugar que preservava seu tempo e seu espaço – por isso, três anos de espera Em maio de 2010, apresentei o Pequeno Jesus no boletim da comunidade coreana. Na época, eu não conhecia bem a instituição, mas sabia que se tratava de um lugar que servia a população local no Brasil. Por isso, publiquei apenas o nome e o endereço, como forma de apresentação. Mais tarde, com o desejo de conhecer melhor o trabalho realizado e ver se havia algo em que eu pudesse ajudar, liguei para agend...

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⑯ 웃음으로 문을 열어 준 곳 ― 작은 예수회

이미지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오후, 작은 예수회를 가다 2024년 4월, 대구 앞산전망대의 수녀님 사진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오후, 나는 봉헤찌로에 있는 ** 작은 예수회 **를 방문했다. 전화를 드렸더니 “언제든지 오시면 돼요” 하고 웃으며 말씀해 주신 분은, 최근 새로 오셨다는 정미영 테레자(Tereza) 수녀님 이었다. “언제든 오면 된다”는 이 한마디. 참 낯설면서도 감사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과거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지켜온 곳, 그래서 3년이 걸렸다 2010년 5월, 한인회보에 작은 예수회를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 작은 예수회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브라질 땅에서 현지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름과 주소를 소개 차원에서 올렸던 기억이다. 이후 직접 방문해 혹시라도 더 도울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드려 방문 날짜를 상의했지만, 주말 외에는 시간이 어려운 나에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은 방문이 안 됩니다.” 당시 작은 예수회를 맡고 계시던 원장 수녀님의 말이었다. 이후 한 번 더 전화를 드렸지만 결과는 같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번에는 테레자 수녀님과 인연이 닿았는지 생각보다 쉽게 방문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테레자 수녀님의 첫인상은 웃음과 평안 그 자체였다. 작은 예수회 안뜰에 있는 예수님 동상의 얼굴이 수녀님과 닮아 보였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내 마음이 그렇게 보이게 한 것일까. ❖ 조용히 이어지고 있던 돌봄의 현장 당시 브라질의 작은 예수회는 65세 이상, 연고 없는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양로원 을 운영하고 있었고 행려인들에게 아침과 점심을 무료로 제공 하고 있었다. 작은 예수회는 거리에서 행려인들을 맞지 않았다. 안에 있는 큰 식당으로 모셔 차분하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 브라질 영주권 갱신 정보 (2026)

이미지
  📌 대표 안내글   (2026.01.23 Updated) ※ 본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이며, 실제 영주권 디자인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는 구식·신형 CRNM 모두 유효합니다.  최근 변화와 배경 2026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삐아우이(Piauí) 주 에서는 브라질 국민을 대상으로 버스·항공기 탑승 시 **새로운 국가 신분증(CIN)**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은 현재 신분증을 통합·디지털 관리 방향 으로 전환 중이며, 일부 주에서 이미 새로운 신분증을 실제 탑승 절차에 적용 하고 있다는 점은 이 방식이 조만간 브라질 전역으로 확장될 가능성 을 의미한다. (참고로 미국 역시 안전 강화를 목적으로 Real ID 라는 새로운 신분증을 발급해 국내선 탑승에 적용하고 있다.) 왜 지금 영주권을 갱신하려 하는가 새로운 모델의 영주권 CRNM 에는 QR코드가 포함되어 있어 문제가 없지만, 구식 영주권을 소지한 외국인들 은 해외에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공항에서 반복적인 설명과 추가 확인 을 요구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구식 영주권에는 QR코드가 없어 공항이나 현장에서는 매번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실무적으로는 새 영주권으로 바꾸는 것이 더 편하다. 이런 이유로 이번에는 직접 영주권 갱신 신청을 진행하면서 2026년 기준의 최신 정보를 다시 정리 해 보려 한다. 🚨 중요 안내 갱신 신청을 완료하면 즉시 출력해야 하는 서류 가 생성됩니다. 따라서 프린터가 있는 장소에서 신청 하시길 권장합니다. gov.br 통합 이후, 기본적인 신청 루트 예전에는 연방경찰 사이트에서 비교적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gov.br 공공 서비스로 통합 되어 운영되고 있다.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기본 루트만 따라가면 어렵지 않다. 기본 경로 gov.br 접속 검색창에 Carteira de Registro Nacional Migratório 입력 첫 번째 서비스 Substituir C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