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3일 토요일 오후, 작은 예수회를 가다
2024년 4월, 대구 앞산전망대의 수녀님 사진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오후, 나는 봉헤찌로에 있는 **작은 예수회**를 방문했다.
전화를 드렸더니 “언제든지 오시면 돼요” 하고 웃으며 말씀해 주신 분은, 최근 새로 오셨다는 정미영 테레자(Tereza) 수녀님이었다.
“언제든 오면 된다”는 이 한마디.
참 낯설면서도 감사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과거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지켜온 곳, 그래서 3년이 걸렸다
2010년 5월, 한인회보에 작은 예수회를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 작은 예수회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브라질 땅에서 현지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름과 주소를 소개 차원에서 올렸던 기억이다.
이후 직접 방문해 혹시라도 더 도울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드려 방문 날짜를 상의했지만,
주말 외에는 시간이 어려운 나에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은 방문이 안 됩니다.”
당시 작은 예수회를 맡고 계시던 원장 수녀님의 말이었다.
이후 한 번 더 전화를 드렸지만 결과는 같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번에는 테레자 수녀님과 인연이 닿았는지
생각보다 쉽게 방문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테레자 수녀님의 첫인상은
웃음과 평안 그 자체였다.
작은 예수회 안뜰에 있는 예수님 동상의 얼굴이
수녀님과 닮아 보였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내 마음이 그렇게 보이게 한 것일까.
❖ 조용히 이어지고 있던 돌봄의 현장
당시 브라질의 작은 예수회는
-
65세 이상, 연고 없는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
행려인들에게 아침과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작은 예수회는 거리에서 행려인들을 맞지 않았다.
안에 있는 큰 식당으로 모셔
차분하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수녀님의 이 말은
그저 말로만 들리지 않았다.
이 장면을 보며,
봉헤찌로에서 7년 넘게 행려인 봉사를 하던
한인 부부가 떠올랐다.
이 부부 역시 매일 저녁 5시가 되면
Tres Rios 성당 앞에서 음식을 나누던 분들이었다.
‘브라질에는 이렇게
조용히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 “제일 걱정되는 건 바닥이에요”
무엇이 가장 필요하냐고 여쭈었을 때,
테레자 수녀님의 답은 뜻밖에도 바닥이었다.
어르신들 중에는 휠체어를 사용하시거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방과 거실이 모두 시멘트 바닥이라
혹시 넘어지면 크게 다치실까 늘 마음이 쓰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한인사회에 전했더니,
당시 Rua Prates에 있던 서울식품점 아주머니께서
“전에 뜯어 놓은,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나무 바닥재가 있는데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양이 턱없이 부족해,
결국 한인들의 정성을 모아
한국에서 수입한 고무 바닥재를 설치하게 되었다.
❖ 수녀님들의 방, 그리고 또 한 번의 마음 쓰임
설치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러 갔다가
처음으로 수녀님들의 숙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공간에 남자가 들어오는 건 처음이에요.”
수녀님은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따라 웃던 나는 곧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녀님들의 방과 거실, 화장실까지
모두 어르신들 공간과 똑같은 시멘트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찬 바닥은 여성분들께 좋지 않겠는데요?”
말씀드렸더니 수녀님들은
“우리는 괜찮다”며 웃으셨다.
그 웃음이 오히려 더 안쓰러웠다.
그때 문득,
서울식품 아주머니가 주시려던
나무 바닥재가 떠올랐다.
❖ 교회와 성당을 넘어선 손길
문제는 사람이었다.
쓰던 자재는 설치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
작업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영광교회 성도 두 분이
선뜻 “우리가 하겠다”고 나서주셨다.
공휴일을 이용해 이틀을 꼬박 작업한 끝에,
수녀님들의 방과 거실은
한결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수녀님들이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오히려 우리가 더 행복해졌다.
이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준 사람들,
종교를 따지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먼저 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다시 이어진 인연
이후 LA의 작은 예수회를 방문하기도 했고,
2024년에는 한국에 나가
작은 예수회 대구분원에서
그동안 안부를 나누던 테레자 수녀님과 재회했다.
브라질에서 사역하시다
작은 예수회 원장 수녀로 한국에 오셨고,
“원장은 몇 년마다 투표로 선출된다”는 말씀에서
수녀회 안에도 책임과 나눔의 원칙이
분명히 살아 있음을 느꼈다.
지금도 몸이 힘든 가운데서도
대구분원에서 정신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묵묵히 돌보고 계신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 기록을 마친다.
“예전에 올렸던 자료들이 온라인에서 사라져, 이번에는 최근에 다시 촬영한 사진들로 글을 채웠습니다.”
❖ 작은 예수회의 설립 이념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30)
작은 예수회는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을 넘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 다음 이야기 예고
다음 글에서는,
브라질 우범지역에 위치한 Jandira 선교지에서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함께했던 시간을
이민 50년의 또 다른 기억으로 기록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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