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국여행기 13회 - 부산 여행 ④ - 5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 송정, 검은 바다의 비밀을 풀다 🌊
5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 송정, 검은 바다의 비밀을 풀다 🌊
옛 송정의 산 바로 아래 바닷물은 늘 검은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수심이 깊어 그런가 싶어 무서워서 감히 헤엄칠 엄두를 내지 못했었는데, 55년이 지나 다시 찾은 송정에서 마침내 그 물빛의 비밀을 풀게 되었습니다.
🚃 옛 철길의 화려한 변신, 블루라인파크
세월이 흐르며 강산도, 건물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의 해운대는 그저 넓은 백사장과 식당 몇 곳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블루라인파크'의 해변열차가 미포와 송정을 경쾌하게 오가고 있습니다.
송정은 저의 외갓집이 있던 정겨운 고향입니다. 예전에 부산 시내에서 가려면 굽이굽이 산길을 돌거나 느릿느릿 완행열차를 타야 했지요. 미포 정거장에서 해변열차 2회 탑승권을 끊었습니다. 역 사이 거리가 멀지 않아 보여 바다를 곁에 두고 맘껏 걸어볼 참이었습니다.
'해운대 블루라인파크'는 옛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를 활용해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을 운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좌석이 바다 쪽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 풍경을 즐기기엔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좌석 맨 뒤에 아이를 업고 서 계시던 동남아 아주머니와 할머니 일행이 계셨는데, 일렬 배치의 좌석 구조상 누구도 이분들을 시야에 담아 배려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바다 조망도 좋지만, 타인을 양보하고 배려하기엔 다소 아쉬운 구조였습니다.
열차는 미포정거장을 출발해 달맞이터널, 청사포 정거장, 다릿돌전망대, 구덕포를 지나 마침내 송정으로 향했습니다.
🛤️ 정겨운 송정 철길과 50년 만에 풀어낸 검은 바다의 비밀
송정역에 도착하며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찻길은 참 친근하다는 점입니다. 브라질이나 포르투갈의 기찻길은 보통 1미터 밑으로 떨어져 있어 발을 내디디기 힘든데, 한국의 철길은 바로 옆으로 발을 살짝 내디디면 닿을 수 있는 평면에 있더군요. 50년 넘게 타국에 살며 이제야 알게 된 우리 철길만의 특별한 매력이었습니다.
옛 모습을 간직한 송정역을 나와 아련한 기억 속의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릴 적 물놀이를 즐기던 왼쪽의 산(죽도공원)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산은 움직이지 않으니 제 동심 속 기억을 오롯이 불러일으켜 주었지요.
바닷물이 예전보다 멀리 빠져 있어서인지 바위와 돌들이 많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카메라 줌을 당겨보니 여인 두 분이 바위 사이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고 있더군요. 바로 싱싱한 **미역**이었습니다.
문득 55년 전, 이모께서 "이쪽 미역은 별로다, 기장 미역이 최고다" 하시며 던지시던 말씀이 떠올라 혼자 미소 지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깔끔한 흰색 카페로 들어섰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치즈케이크를 주문하고 편안한 자리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늑한 정자 너머로 아련한 옛 송정의 풍경이 오버랩되었습니다.
50년 전에는 카페 뒤편으로 조그만 모래사장을 끼고 작은 강이 흘렀고, 구멍이 뻥뻥 뚫린 철제 다리를 건너야 정자가 있는 산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작은 강은 사라졌지만 바다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네요.
초등학생 때 수영하며 '왜 저쪽 물은 까말까? 수심이 깊어 무서운 곳인가 보다' 하고 피해 다녔던 송정 바다. 고지대에서 내려다볼 수 없었던 그 시절엔 몰랐지만, 바닷물이 시꺼멓게 보였던 이유는 다름 아닌 바위표면에 무성하게 자란 미역과 해초류 때문이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야 마침내 그 의문이 시원하게 풀렸습니다!
카페 오르내리는 계단에는 아기자기한 레고 인형 액자들이 진열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페 'The Rest Marine'을 나와 앞쪽의 죽도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죽도공원이라는 이름과 달리 지금은 대나무가 많이 보이지 않더군요. 예전엔 빽빽했었겠지 추측해 봅니다.
언덕 아래 정자의 이름은 송일정(松壹亭)이었습니다. 송정이라는 이름 중간에 '일'자를 넣었으니, 나중에 지어질 정자는 '송이정'이 되려나 미소 지어봅니다. 정자에는 어르신들이 모여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계셨습니다.
정자 아래쪽으로 방파제가 보이고 어선들이 여럿 모여 있기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 기적 같은 만남: "옆에 살던 양철집이에요"
방파제 근처에서 해산물을 파시는 어르신 한 분을 만났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할아버지의 존함을 여쭈어보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이모와 삼촌의 안부까지 속속들이 기억하시는 이웃 어르신을 우연히 만나다니, 살다 보니 이런 각별한 재회가 다 있나 싶었습니다. 어르신의 안내 덕분에 옛 외갓집 터(지금의 장칼국수 식당 자리)를 확인했고, 외할아버지께서 브라질로 이주하시기 전 전 재산을 송정교회 건축헌금으로 내놓으셨다는.. 가족도 알지 못했던 가슴 뭉클한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외갓집 터 바로 뒤편에 위치한 송정교회는 생각보다 크고 단정했습니다. 아쉽게도 방문한 날이 월요일이라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송정 해변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서핑학교'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가 그간 참 풍요롭고 다채로워졌음을 실감합니다. 어린 시절 아침마다 높은 파도가 치던 송정 바다였기에 서핑하기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여행의 끝자락,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와 달맞이길 산책
송정역에서 다시 열차를 타고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에 내렸습니다. 2회 탑승권이 모두 소진되어 여기서부터는 데크 산책로를 걸어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전망대 끝자락은 투명 유리가 깔려 있어 입구에서 배부해 주는 덧신을 신발 위에 덧씌우고 입장해야 합니다. 하이힐, 등산용 스틱, 우산, 음식물 반입이나 반려동물 동반은 금지되어 있더군요.
청사포 다릿돌의 유래: 청사포 해안에서 해상 등대까지 가지런히 늘어선 다섯 개의 암초가 징검다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전복과 성게가 풍부해 해녀들의 물질 장소가 되어왔고, 마을 수호신인 푸른 용을 형상화하여 이 다리를 건설했다고 하네요. 근사하게 아주 잘 만들어놓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철길 바로 옆으로 이어진 데크 산책로를 걸어 미포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기차를 탈 때와는 또 다르게 나지막이 바다 숨소리를 들으며 걷는 정취가 훌륭했습니다.
청사포 정거장 부근에는 아기자기한 식당들과 카페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신선한 '곱창쌀국수' 현수막이나 베트남 반부침(반세오) 반찬 안내문도 흥미로웠네요.
포구 너머로 유명한 청사포의 흰 등대와 빨간 등대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해안가 길목마다 정겹게 미역을 말리고 있는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띄었고 가끔 유럽인들도 지나쳐 갔습니다.
24시간 무인 셀프 포토 스튜디오가 보이기에 직접 들어가 보았습니다. 소품들을 사용해 추억 사진을 찍는 곳인 줄도 모르고 얼떨결에 체험해 보았네요. 신기한 요즘 문화입니다.
머리 위 공중 레일로는 귀여운 캡슐형 기차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습니다. 다음번 방문 때에는 저 스카이캡슐을 꼭 타보겠노라 마음먹어 봅니다.
내친김에 달맞이길 방향을 검색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달맞이길인지는 다소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해운대 언덕 일대를 한 시간가량 쾌적하게 둘러보았습니다.
스쳐 지나온 길에는 달맞이길뿐만 아니라 해돋이길도 함께 있었겠거니 여겨봅니다.
이렇게 돌고 돌아 다시 아침에 찾았던 해운대 백사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해변가에는 노상 족욕탕이 설치되어 있어 많은 분들이 여유롭게 족욕을 즐기고 계셨습니다.
어디로 더 가볼까 하다가 '동백섬' 표시가 보여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는 길에 조용필 씨의 명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사 속 동백섬 구절이 적힌 노래비도 만나고, 예쁜 파란색 산책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예전에는 바다로 둘러싸인 진짜 섬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육지와 도로로 수월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동백섬에서 해운대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 후, 대로로 나와 '동백섬입구' 정류장에서 부산역행 급행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건너편 산을 바라보며 비로소 '아, 내가 저 섬 안에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 부산역 차이나타운에서의 저녁 식사
1시간을 달려 부산역에 내리니 허기가 밀려왔습니다. 부산역 맞은편이 차이나타운거리라는 사실을 버스에서 내려서야 알게 되어 곧장 중식당을 찾았습니다.
좋아하는 삼선짜장을 주문하려 했으나 '옛날 짜장면' 메뉴는 없다고 하더군요. 해외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메뉴인데 막상 오리지널 고국 중식당에 없으니 살짝 의아하긴 했습니다. 하하. 쌀쌀한 날씨에 따끈한 짬뽕을 맛있게 즐기며 저녁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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