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국여행기 18회 - 대구의 감성, 김광석 길을 걸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엿본다.
KOREA TRAVELOGUE #18
✈️ 고국여행기 18회 - 대구의 감성, 김광석 길을 걸으며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에서 만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아날로그 감성
📌 이번 여정의 한 줄 생각
대구에서의 둘째 날 아침은 뜻밖의 '요구르트 배신'으로 조금 무겁게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마주한 풍경들은 그 불편함을 금세 잊게 할 만큼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어제 보았던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이 소설적 감동이었다면, 오늘 걸은 '김광석의 다시그리기 길'은 음악과 벽화가 어우러진 공감의 장이었습니다. 60~70년대 교복 차림의 학생 그림 앞에서 잊고 지냈던 나의 어린 시절을 꺼내 보기도 하고, 산책로에 펼쳐진 현대적인 블루투스 벤치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의 숨결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 요구르트의 배신과 조용한 동성로의 아침
어제 동대구로 와서 구경을 마친 후 저녁을 늦게 먹고 CU 편의점에 들러 우유를 샀다. 거의 매일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를 사 마셨는데, 이날은 딸기우유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 집어 들었더니 계산대 아주머니께서 "이거 1+1이에요" 하시며 딸기우유 하나를 더 가져다주셨다.
"아침에 마실 것이라 하나면 충분한데 두 개를 주시니 밤에 마셨는데... 에고야, 우유가 아니라 진한 요구르트였다. 다음 날 아침 나머지 하나를 마셨더니 속이 너무 거북하다."
아침 7시 15분경, 배가 더부룩하여 호텔 조식에서 크림스프와 게맛살만 조금 먹고 나왔다. 부산처럼 쌀죽도 없고 식사 메뉴 종류도 적어 아침식사만큼은 부산 토요코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식사를 하면서 창밖을 보니 대구 제일교회 건물이 조용히 내려다보인다.
7시 30분, 호텔을 나와 아침 동성로 거리를 걸었다. 어제 저녁 청년들로 바글바글하던 버스킹 거리가 한적하고 조용하여 사진 찍기에는 참 좋다.
아침 일찍 어디로 갈까 검색해 보니 인근에 '김광석의 다시그리기 길'이 있다고 한다. 어제 보았던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에 이어 이번엔 김광석 길이라니, 대구에서는 김씨 성을 가진 분들이 유난히 유명한가 보다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길을 걷다 보니 "학교 주변도 금연 구역입니다"라는 안내 배너가 보인다. 학교 내부뿐만 아니라 주변 경로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브라질에서는 흡연자들이 주위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서 비흡연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며, 최근에는 길거리에서 대마초 냄새까지 풍기는데(미국은 더 심하다!), 한국의 이런 자율적 성숙함은 늘 부럽다.
가는 길목 곳곳에 그려진 김광석의 캐릭터와 전봇대 안내판을 보니 드디어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음을 느낀다.
📍 골목마다 흐르는 음악,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대구에서 태어난 싱어송라이터 김광석. 안타깝게도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음악과 삶의 궤적은 이곳 문화거리를 통해 아름답게 재탄생했다. 조성 당시 찬반 여론도 있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문화적 유산을 통해 도시 환경을 가꾸고 볼거리를 만들어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는 시도는 참 바람직하다.
길 입구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그의 울림 있는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둘러보니 거리 상단 곳곳에 정갈하게 스피커가 설치되어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니 따뜻한 분위기의 벽화들이 정겹게 이어지고, 길가 벤치마저 아기자기한 기타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정서적이고 따스한 느낌이 가득하여 특히 여성들이 참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70~80년대 감성의 그림들이 주로 채워져 있다. 벽화 속 전철은 초등학교 시절 직접 타본 기억이 나고, 전봇대 옆 교복을 입은 학생의 모습은 학창 시절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나 역시 교복 입은 여학생을 좋아했던 아련한 시절이 있었지... ㅎㅎ) 이 거리를 기획한 분은 틀림없이 50년대나 60년대 생이리라. 그 시대만의 독특한 정서를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해 낼 수 없었을 테니까.
걷다 보니 꽤 커다란 규모의 야외 콘서트장도 나타난다.
이 골목길은 전체 길이가 약 350m 정도 되는데, 나는 중간 지점에서 시작해 우측 방향으로 걸어왔다. 벽면에 철제로 만든 기타 형태와 줄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 대로변의 현대적 산책로, '김광석 숲길'과 미래 세대
골목길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좌측 대로변으로 이어지는 '김광석 숲길' 안내판이 보였다. 코너를 돌아 유턴하듯 나가니 대로변 입구에 웅장한 대형 기타 조형물이 우뚝 서 있었다.
아래 골목길이 레트로한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맛보기였다면, 위쪽 대로변 산책로는 정돈된 모던함을 자아낸다.
공영주차장 엘리베이터도 보이고, 아까 골목에서 보았던 야외 공연장이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300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제법 큰 공간이다.
산책로에 구부정한 자세로 책을 읽는 학생 조형물이 보여 유심히 보았더니, 편히 기대어 쉴 수 있게 창의적으로 만든 휴식용 벤치였다. 독창적이고 위트 있는 디자인이다.
산책로 중앙에 쇠로 만든 타원형 구조물이 있기에 '장미 넝쿨 터널인가?'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버려진 자전거 바퀴들을 엮어 만든 참신한 재활용 예술 작품이었다.
💡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큐브벤치'
밤 11시까지 은은한 조명이 켜지고 스마트폰 블루투스 통신을 연결하여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현대적인 첨단 벤치다. 아래 골목길이 60~70년대 아날로그 정서에서 출발했다면, 위 대로변은 스마트 기술과 달나라 모형 벤치가 어우러져 미래 세대까지 포용하는 깊은 공간적 울림을 전해준다.
길 건너에도 하트 모형 속 '사랑의 자물쇠' 공간과 김광석의 노랫말을 적어둔 원통 조형물이 예쁘게 연결된다.
꽃밭 주변으로 LED 조명이 촘촘히 꽂혀 있어 저녁이 되면 차를 타고 지나는 이들도 이곳이 김광석 길임을 한눈에 알 수 있고, 청춘들의 로맨틱한 데이트 코스로도 훌륭할 듯싶다. 미끄럼 방지를 위해 바닥을 푹신한 매트로 마감하고, 맨홀 뚜껑 하나까지 예술적으로 디자인해 둔 섬세함도 돋보인다.
📍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돌아 나와 골목의 초입으로 향했다. 김광석에 대한 상세한 소개 글과 그가 남긴 음반, 그리고 이 길을 만든 배경이 설명되어 있다.
대중음악인의 이름을 딴 거리는 전국 최초라고 한다. 또한 "이 거리에서 김광석보다 더 뛰어난 예술가가 탄생하고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구절이 깊은 울림을 준다.
전화하려 줄 선 사람들의 모습, 비 오는 날 우산을 든 남자와 전봇대를 활용한 벤치까지... 재치 넘치는 벽화와 조형물들이 미소를 자아낸다.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라는 가사처럼, 그 역시 그렇게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섰어야 했는데... 어쩌면 스스로에게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있었기에 그런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검색해 보니 그의 안타까운 사망에는 조울증이 관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은 편안한 내세를 즐기리라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히 쉼을 얻고
벽화의 노부부처럼 우리 모두는 정해진 곳을 향해 간다...
벽화 그림에 감회가 깊어져 나도 모르게 시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느새 길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렇게 골목, 대로, 다시 골목으로 이어지는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투어를 가슴 뭉클하게 마쳤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길바닥의 맨홀 뚜껑이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듯 정겹게 지표가 되어준다.
✈️ 다음 여정 안내
이제 지하철을 타고 작은예수회 대구분원에 계신 정미영 테레자 원장 수녀님을 찾아뵐 예정이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지하철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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