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한인 이민사 70년 대와 80년 대 초반, Liberdade에 위치한 Rua Conde de Sarzedas 거리가 한인촌이었습니다.
💬 한인촌이라는 명칭은 우리 한인들이 많이 살아 우리 한인들끼리 부르던 명칭인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LiIberdade 지역은 일본 이민자들이 많았던 곳으로, 1912년 당시 Rua Conde de Sarzedas 거리에는 일본인 초기 이민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1932년경에는 600여명이 거주하였다고 기록에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윗 그림을 끌릭하시면 됩니다)
당시 한인촌 길에 있는 집들은 지하에 방이 많이 있었는데, 지하에 있는 방의 월세 가격이 상당히 저렴하고 또 S.P. 중심지와 일터가 가까와 많은 초기 일본인 이민자들의 거주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값싼 월세와 같은 동양인 일본인이 많은 거리는 자연히 우리 브라질 한인 초기 이민자들에게도 편한 곳이 되어 우리 한인들도 초기에 많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윗 그림을 올려놓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측 붉은 건물이 옛날 궁전이라고 불리우던 한인식당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결혼식도 하였었습니다.
R. Conde de Sarzedas 길과 그 옆으로 있었던 길에는 우리 한인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서울교회, 순복음 교회, 상파울로 교회, 남미교회, 영생교회, 영광교회 등 많은 교회가 있었고 몇 개의 한인 식당과 식품점이 있었으며 주위에는 2~3개의 한인약국도 있었고 한인회장을 하셨던 이영만 의사분도 있었으며 의류업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또 성당도 한인촌 아래 쪽에 위치하였었습니다.
아직까지 한인촌 아래 쪽에는 한인교회가 자리를 옮기지 않고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조금 떨어진 인근에는 연합교회가 있었는데 이 두 교회는 인근 가난한 지역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연합교회는 얼마 전 봉헤찌로로 이전하였습니다)
70년대 중반, 한국으로 부터 이민을 오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당시의 한인촌에 얼마씩 머무른 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었습니다. 한인들이 밀집되어 있지 않는 Cambuci, Aclimação, Paraiso, Ipiranga 등의 주거 지역으로 점 차 많이 들어갔습니다.
한인촌은 동양인들 특히 한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당시 한인촌에서는 하루 걸러 강도사건이 빈번히 일어났었으며 주위 지역은 범죄가 날이 가고 해가 지날수록 심해져 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80년대 초 부터 1~2개의 교회들이 한인들이 많이 주거하는 Aclimação(아끌리마썽)과 Cambuci(깜부씨)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고 많은 한인 업소들도 위험한 지역인 한인촌 Conde de Sarzedas 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인터넷에서 오래된 Conde de Sarzedas 길 사진을 가져온 것입니다. 집들을 보아 한인촌 아래로 보입니다. 집 아래 지하방들이 보이는데.. 제가 브라질에 온 76년도 당시 우리 한인들이 이런 지하방에 사신분들은 많이 없으신 것으로 압니다. (조금은 있으셨다고 함)
당시 60년대에 오신 분들은 열심히 고생하셔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76년도에 이민온 저희 가족은 1년 전에 먼저 오신 분의 아파트에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그래도 엘레베이터가 있던 아파트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엘레베이터는 백화점이나 가야 타 볼수 있었는데 개인 아파트에 엘레베이터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
쌍빠울로의 대도시 중에서 왜 Conde de Sarzedas길이 한인촌이 되었고 왜 그곳이 더 이상 한인들이 살지 않게되었는지에 대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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