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가 알고 있던 ‘학교’의 이미지가 완전히 깨지는 것을 느꼈다.
외딴 동네, 구석진 위치. 겉에서 보았을 때는 짐작하기 어려웠던 공간이 안으로 들어오자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조용히 일한다”는 말이 이렇게까지 철저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상상과 전혀 달랐던 내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넓고 정돈된 공용 공간이었다.
대기실은 예상보다 훨씬 컸고, 많은 사람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병원이나 공공기관에서 보던 공간보다도 오히려 더 단정해 보였다.
이곳이 단순히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바로 드러났다.
치과 진료실이 두 곳, 그리고 내과·소아과·침구 치료를 위한 진찰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모두 무료로 운영된다고 했다.
시설은 ‘최소한’이 아니라 ‘충분함’에 가까웠다.
학교이면서, 병원이었고, 삶의 공간이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들이 이어졌다.
교실, 도서실, 소강당, 컴퓨터 교실, 그리고 봉제실까지.
공부만 시키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기술을 가르치는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아이들이 만든 도자기, 손으로 뜬 작품들, 종이로 만든 묵주까지.
이 공간이 얼마나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졌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아주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화장실이 유난히 깨끗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화장실을 너무 지저분하게 써서 청소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공간을 어떻게 쓰는가’를 차분히, 반복해서 가르쳤다는 말이었다.
청소까지 직접 도맡아 하시는 수녀님들의 모습에서 이곳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가 가장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이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이곳은 단순한 학교도, 단순한 복지시설도 아니었다.
아프면 치료받고, 배우고, 기도하고, 놀고, 생활하는 곳.
아이들의 하루 전체를 조용히, 그러나 책임감 있게 감싸고 있는 공간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절대 허술하지 않은 곳.
그날 내가 받은 놀라움은 건물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말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이 글은 2011년 3월 6일, 직접 방문하여 보고 느낀 기록과 사진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이 글은 ‘브라질 한인 이민 50년’ 연재 글입니다.
이곳을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왜 이런 일은
그의 이름과 함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다음 글에서는
마리아 수녀회를 창설한 한 신부의 삶과 선택,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다루려 한다.
〈3편 : 한 사람의 선택이 만든 역사〉로 이어집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 남기실 말씀이 있으시면 댓글 쓰기를 누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