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민 50년을 살며, 한 권의 책에서 마주한 역사
브라질 이민 50년을 살며 나는 브라질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지켜보아 왔다.
그중 하나는 마리아 수녀회를 방문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된 이야기다.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다
마리아 수녀회를 방문하고 돌아오며 수녀님 한 분이 조용히 책 한 권을 건네주셨다.
제목은 『마리아 수녀회 40년사』.
두툼한 책이었고, 솔직히 처음에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다 헤아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책을 덮을 수 없었다.
그 안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그러나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이야기들이 차분히 정리되어 있었다.
‘영화숙’이라는 이름
책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영화숙’이었다.
처음에는 오래된 시설 이름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이름이 지닌 무게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17년 전, 이해하지 못했던 한 이야기
그때 문득 오래전 한 어르신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약 17년 전, 알파빌리에 거주하던 연세가 여든을 훌쩍 넘긴 한 어르신이
자신이 젊은 시절 ‘영화숙’을 관리하던 사람이었다고 담담히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치료가 끝난 뒤 인터넷을 통해 여러 차례 찾아보았지만 관련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그 이야기는 그렇게 내 기억 속에 조용히 묻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이었다
수녀님이 건네주신 『마리아 수녀회 40년사』 속에서 다시 ‘영화숙’이라는 이름을 마주하는 순간,
그때 들었던 그 어르신의 말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지금도 ‘영화숙’에 대한 기록은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다.
일부 인권유린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전쟁 직후 한국에 들어온 한 신부와 수녀들의 선택이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한 신부의 선택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 신부가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와 생활 방식도 전혀 다른 나라.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던 한국에서 그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 그의 업적을 하나하나 열거하지는 않으려 한다.
사진 몇 장 속에 담긴 장면만으로도,
한 사람이 평생을 걸어 만들어 온 시간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기를 바란다.
1970년대, 전쟁과 가난으로 수많은 고아들이 생겨났고
그 아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영화숙’이라는 곳에 사실상 가두어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심각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상황 앞에서 마리아 수녀회는 백만 명 서명운동을 벌였고,
수많은 방해와 폭력 속에서도 결국 301명의 아이들을 그곳에서 데리고 나왔다.
삶을 다시 만들어 주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했다.
국민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실업학교, 그리고 대학까지.
아이들은 배우고, 일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해 갔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며,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닌
자립한 삶의 주체가 되었다.
한국을 넘어, 그리고 지금
알로이시오 몬시뇰 신부의 선종 이후에도 이 사역은 멈추지 않았다.
미카엘라 수녀를 비롯한 수녀들이 그 뜻을 이어
활동은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를 거쳐 브라질로 확장되었다.
상파울루 성베르나르도, 그리고 수도 브라질리아까지.
오늘도 수백, 수천 명의 아이들이 숙식과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직접 보고 확인한 목격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 본문에 사용된 사진 자료는 2011년 마리아 수녀회 부산 분원의 허락을 받아 사용한 자료입니다.
과거에 공개되었던 일부 자료가 유실되어 완전하지는 않으나, 다시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마리아 수녀회의 이야기는 과거의 미담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는 역사이며, 반드시 다음 세대에게 전해져야 할 기록이다.
다음 글에서는 또 다른 사람들을 조명하려 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의 도움은 언제나 예상치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만을 잇기보다,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를 한 번 꺼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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