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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⑨ 삶과 죽음 사이에서 다시 바라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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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선교사와의 만남과 어머니의 죽음

어떻게 죽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


요약
아마존 선교사를 진료실에서 만나며, 삶의 무게가 몸에 남긴 흔적을 보게 되었다.
그 만남은 어머니의 죽음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어떻게 죽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묻게 했다.



진료실에서 만난 한 사람

2013년, 아니면 2014년쯤이었을 것이다.
수염이 더부룩한, 인상 좋은 아저씨 한 분이 한의원에 오셨다.
잘 웃고, 아재 개그도 섞어가며 분위기를 풀려 하셨다.
본인은 재미있어 하셨지만, 나는 진료를 하며 점점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속이 불편하다 하셨고, 목도 불편하다 하셔서 살펴보니 경추 디스크가 있었다.
무릎은 양쪽 모두 오래전부터 슬개골 주변 통증이 있었고,
눈도 좋지 않고, 허리·어깨·팔꿈치까지…
한두 군데가 아니라 몸 전체가 망가져 있었다.

‘이분은 대체 무슨 일을 하시길래 이렇게 아프신 걸까.’


아마존 선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직업을 여쭤보니, 아마존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라고 하셨다.
그제야 이 몸 상태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마존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적지 않게 보아 온 나로서는,
‘선교를 한다’는 말만으로 누군가를 쉽게 좋게 보지는 않게 되었다.
들어갔다가 얼마 못 버티고 포기하고 나오는 사람도 있었고,
안타깝게도 제도나 현실을 이용하려는 모습들을 보아 온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천주교 국가이며,
종교인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비교적 관대한 나라다.
정식으로 브라질에 입국해 영주권을 취득하는 여러 경로 가운데
종교 활동을 통한 체류는 행정적으로 비교적 수월한 편에 속해 왔다.

목사나 선교사의 경우,
소속 교회에서 초청장을 받으면 비교적 쉽게 입국이 가능했고,
그 과정이 영주권 취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한동안 아마존 선교는
신앙과 사명, 그리고 현실적 목적이 뒤섞인 공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이 반복되면서 현재는
아마존 선교를 목적으로 인디언 부족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
까다로운 허가 절차와 여러 제약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아마존은,
말처럼 낭만적이거나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마존이라는 삶의 자리

전기 없는 곳에서 쪼그리고 앉아 글을 쓰고,
위생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수년을 지내다 보니
무릎, 허리, 눈, 위장, 귀까지 하나둘 탈이 난 것이다.
말 그대로 몸으로 살아낸 삶의 흔적이었다.

그분은 미국에 본부를 둔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 소속으로,
아마존의 수많은 인디언 부족 가운데
바나와 부족이 사는 섬에 들어가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계셨다.

마나우스를 거쳐 경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약 200명 남짓한 인디언들이 사는 고립된 섬.
몇 달씩 그곳에서 생활하며 글을 만들고,
센터로 나와 정리한 뒤 다시 섬으로 들어가는 삶을 반복하신다고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섬에서 하루 한두 끼를 겨우 먹다가
상파울루에 나오면 음식이 다 맛나게 보여
오시면 과식으로 늘 문제가 되신다.
그분의 몸은 ‘종합병원’이라는 말로 표현을 대신한다.

바나와 부족의 언어로 성경을 만드는 작업은
한 사람의 시간만으로는 끝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아마존에서는 한 선교사가 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뒤,
그 일을 아내나 자녀가 이어받아 완성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말 그대로, 한 세대의 일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작업이다.

강명관 선교사님의 경우에도
오랜 시간에 걸친 바나와 부족 성경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셨고,
그 긴 여정은 하나의 사명으로,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한 일을 끝낸 뒤에도 그의 삶은 멈추지 않았다.
현재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고 들었다.
사역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사람 곁에 머무는 삶이라는 방향은 여전히 같아 보였다.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남아 있던 질문

1년에 한두 번 정도 치료하며 가까워진 어느 날,
나는 오래 마음에 남아 있던 질문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2009년 1월 5일 새벽,
어머니는 집에 들어온 강도에게 총을 맞고 돌아가셨다.
브라질에 와서 늘 느끼던 치안에 대한 불안이
결국 우리 가족에게도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 후 나는 6개월을 고민했다.
치안이 더 나은 미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땅에 남을 것인가.
미국 영주권도 있었기에 선택은 더 무거웠다.

결국 나는 브라질에 남기로 했다.
두려움보다, 이 땅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을 마음으로 정리하는 일은
그 결정 이후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이렇게 돌아가셨는데,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분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자신 역시 아마존의 고립된 섬에서
표범과 독사, 그리고 댕기열과 황열병 같은 질병에 늘 노출된 채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게 될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고.

사람이 어떻게 죽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그 말은 짧았지만,
그 이후의 생각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 한 문장

진료실에서 목사님을 보내고 난 뒤,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던 질문 하나가 사라지고
다른 생각 하나가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죽느냐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이 글은 그 사실을
내 삶의 자리에서 다시 확인하게 해 준 기록이다.

다음 글에서는

브라질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 이 글은 ‘브라질 한인 이민 50년’ 연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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