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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 글은 당시 한인 이민자들이 실제로 거쳐야 했던 경로와 한인촌 형성의 배경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증언이다.
1976년, 브라질로 향한 첫걸음
1976년 3월 26일, 우리 가족은 서울 김포공항을 떠나 이틀간의 고된 여정 끝에 3월 28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꽁곤냐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우리를 맞이한 분은 아버지의 오랜 단골 환자였던 오항근 사장님이었다.
아버지가 브라질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브라질에 거주하던 또 다른 단골 환자 김병수 사장님의 권유와 늘 곁을 지키던 의형제 여주호 삼촌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다.
우리는 대한항공으로 김포에서 출발해 알래스카를 경유,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뒤 장시간 대기 후 브라질 국적 항공편을 타고 리마를 거쳐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일요일이었던 공항은 한산했고, 공항 직원들의 정돈된 모습과 친절한 태도는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한인촌, Rua Conde de Sarzedas
브라질 도착 후 우리는 당시 ‘한인촌’이라 불리던 Rua Conde de Sarzedas로 향했다.
당시 대부분의 한인 이민자들은 이곳에 잠시 머문 뒤 다른 지역으로 옮겼는데, 이 일대가 오래전부터 우범지역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10일짜리 경유비자를 받은 우리는 오사장님 아파트에 짐을 풀고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아버지는 지인들과 산토스를 다녀오며 브라질이 생각보다 살 만한 곳이라는 인상을 받으셨다고 한다.
선택의 갈림길, 브라질인가 파라과이인가
경유비자 만료를 앞두고 부모님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브라질에 그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파라과이를 거쳐 영주권을 먼저 취득할 것인가.
주변에서는 굳이 파라과이를 갈 필요가 있느냐는 말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파라과이 영주권(Carne)을 먼저 취득한 뒤 브라질로 돌아오는 길을 선택하셨다.
파라과이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
1976년 4월, 파라과이에 도착한 나는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공항은 시장처럼 혼잡했고, 신발을 신지 않은 사람도 많아 ‘정말 가난한 나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질과는 모든 면에서 대비되었고, 특히 오후가 되면 낮잠을 위해 상점들이 문을 닫는 문화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우리는 하루를 묵은 뒤, 신청해 둔 영주권(Carne)을 아버지가 직접 수령해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 세 명은 먼저 브라질로 이동하게 되었다.
당시 브라질에 거주하던 한인 청년이 안내를 맡았고, 1인당 미화 100달러의 비용을 지불했다.
전문 브로커를 이용할 경우 300~500달러, 짐이 있을 경우 추가 비용이 붙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해외로 반출할 수 있는 금액이 1인당 300달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비용은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밀입국의 현실
정식 절차가 아니었기에, 국경을 넘다 붙잡히면 구금·추방·금전 손실은 흔한 일이었다.
실제로 같은 해 입국을 시도했던 한 장로는 두 차례 실패를 겪은 뒤, 세 번째 시도에서야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상파울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 역시 안내자의 인솔로 밤중에 국경 근처 모텔에 도착한 뒤, 새벽 안개 속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숨어 있다가 뛰라”는 말과 함께 들판을 가로질러 달렸고, 그것이 곧 국경을 넘는 방식이었다.
그 순간, 이것이 옳은 일은 아니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이동한 뒤, 한인 식당에서 처음으로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여러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마무리하며
이민을 떠나기 전 흔히 들었던 “브라질은 파라과이에서 그냥 걸어 들어가면 된다”는 말은, 실상 밀입국을 미화한 표현이었다.
1970년대, 영주권 없이 브라질에 들어온 한인 이민자들의 삶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위험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한인들은 그 속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갔다. 이 글은 그 시절을 직접 지나오며 보고, 듣고, 느낀 기록이며 브라질 한인 이민사의 한 단면이다.
※ 이 글은 ‘브라질 한인 이민 50년’ 연재 글입니다.
▪ 영주권 없이 살아야 했던 이민자의 고통
▪ 엄마와 24살 난 아가씨가 두 달간 석방되지 못하고 수감되었던 이야기
▪ 파라과이 국경에서 만난 ‘나쁜 안내자’와 ‘좋은 안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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