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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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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이민자가 겪은 가장 불안정했던 시기의 기억

이 이미지는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이미지로, 당시 상황을 참고해 표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브라질 한인 이민사는 주로 1차·2차 이민자들의 개척과 고통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왔다.
나는 그분들보다 약 10년 늦게 이 땅에 도착한 세대다.

앞선 이민자들의 어려웠던 시기를 곁에서 보았고,
동시에 내가 직접 겪은 시기는 제도적으로 가장 불안정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후 한인 사회가 점차 정착해 가는 과정까지 지켜본 세대다.

 내가 브라질에 온 것은 1976년이다.
1970년대 중반은 대한민국에서 해외 이민 붐이 일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 캐나다, 호주, 그리고 남미로 이민을 떠났고, 브라질 역시 ‘살기 좋은 나라’라는 평과 함께 선택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았고, 이민 관련 정보도 거의 없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정확한 제도 정보보다는 소개와 소문, 그리고 이민 수속 대행자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14살이던 나는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 부모님과 형제들을 포함한 다섯 식구가 함께 도착했다.
그 시절, 브라질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큰 위안이자 기쁨이었다.

브라질로의 공식 이민은 농업 이민 형태로 1963년에 시작되어 몇 차례에 걸쳐 종료되었다.
이후에는 먼저 정착한 이들의 소개나 친척을 따라 이민이 이어졌지만, 1975~76년 무렵부터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이 시기의 문제는 입국 자체가 아니었다. (입국 자체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영주권 소지 여부였다.
영주권이 없으면 언제든 경찰에 붙잡힐 수 있었고, 실제로 감방에 수감된 뒤 추방되는 일도 흔했다.
약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영주권은 단순한 신분 문제가 아니라 일상과 생존을 좌우하는 조건이었다.

이전 세대의 이민자들은 이런 영주권 문제로 인한 공포를 거의 겪지 않았다.
반면 내가 도착한 시기는, 제도와 현실 사이의 공백 속에서 가장 불안정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이후 세대는 비교적 수월하게 입국하고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맞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 그때의 기억

아버지는 브라질 이민 수속을 마친 뒤 부동산을 정리하고, 가족 다섯 명의 비행기표를 예약하셨다.
출발을 얼마 남기지 않고 여권에 찍힌 비자는 브라질 이민 비자가 아닌 파라과이 이민 비자였다.

왜 브라질이 아니냐고 묻자, 수속을 대행한 사람은
“브라질은 그냥 걸어서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다.
밀입국이라는 현실 앞에서 이민을 포기해야 하나를 두고 깊이 고민하셨지만, 이미 모든 재산을 정리했고 당시로서는 매우 비쌌던 항공권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선택 앞에 섰던 가족은 우리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70년대 중반, 많은 브라질행 이민자들은 파라과이를 거쳐 들어오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파라과이, 그리고 브라질로 가는 길

우리는 먼저 브라질에 도착한 뒤, 파라과이 영주권 절차를 위해 다시 파라과이로 향했다.
1976년 당시 아순시온 공항은 매우 열악했다. 직접 파라과이로 도착한 사람들 중에는, 비행기로 부친 가방이 반쯤 비워진 채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항의조차 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브라질에 잠시 머무르며 짐을 두고 이동했기에 큰 피해는 없었다.

아순시온에는 당시 한인들이 머무는 호텔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은 브라질 입국을 위한 정보가 모이는 중심지였다.
브라질로 들어가는 루트, 브로커 소개, 먼저 출발한 사람들의 소식이 모두 이곳에서 오갔다.

이민 초기, 아이의 눈에 비친 풍경

브라질에 도착한 뒤 어른들의 대화는 늘 무거웠다.

  • - 국경을 넘다 붙잡혀 돌아갔다는 이야기  
  • - 연방경찰에 의해 누군가 체포되었다는 소식  
  • - 어느 집에 도둑이나 강도가 들었다는 이야기  
  • - 때로는 강도 피해로 인한 사망 소식까지

이웃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일상이던 시기였다.

▶ 만약 영주권 문제와 이러한 현실을 한국에서 미리 정확히 알았더라면, 이민을 선택하지 않았을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글 예고

다음 글에서는 몸으로 넘어야 했던 국경,
파라과이에서 브라질로 가는 나의 여정을 포함해
그 시기를 건너온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기록해 보려 한다.

※ 이 글은 ‘브라질 한인 이민 50년’ 연재의 첫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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