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문명 속에서 만난 첫 친구
모뎀 소리로 세상과 연결되던 시절, 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AI가 만든 이미지)
사람은 태어나 서로 만나게 되며 사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문명의 변화로 인해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브라질에서 인터넷이 시작되며 모뎀으로 접속하던 때,
여러 친구들 중 좋은 친구를 하나 만나게 되었다.
컴퓨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할 때…
아마 1998년 정도 되지 않나 싶다.
좋은 글, 감동 글을 찾아다니다가 Daum에서 만난 운영자분.
얼굴도 모르지만 글을 너무 잘 쓰고 말도 조리 있게 하셔서
호감이 가 꼬셨다 ㅎㅎ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넷 상에서도 유명한 여성 시인이었다.
송XX, 시인이자 화가였던 이 분은
항상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동영상이나 그림을 만들어 주셨다.
나에게는 지금의 AI(인공지능) 같은 분이셨다.
자그만치 20년 넘게 우리는 가까운 친구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실크로드라는 희귀불치병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때도 있는 이 분은
브라질 한인사회를 20년 이상 지켜보았고,
또 브라질 한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나를 도와 한인사회에 도움을 주신 분이시기도 하다.
필요할 때만 내가 찾았는데…
지금은 건강히 잘 계시는지,
좀 전 안부 메일을 보냈는데 한메일이 더 이상 되질 않는다. ㅠㅠ
2. 포어 강의가 시작되다 – 남미로닷컴
이후 온라인 상에서 또 다른 친구 하나가 생겼다.
한인닷컴이 남미로닷컴으로 넘어간 후, 그곳에서 만난 친구다.
한인닷컴부터 남미로닷컴까지,
한인들의 가장 큰 이슈는 늘 영주권 문제였다.
(그 다음에 하나로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는 역시 영주권이었다)
나는 늘 익명으로 글을 썼는데,
어느 날 한 사람이 포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더니
여러 명이 동시에 포어를 가르쳐 달라고 말한다.
엥, 포어??
포어는 나와는 거리가 멀고 자신도 없는데?
나도 하기 힘든 포어를 누굴 가르치나 싶어 거절했지만,
기초만 알려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왔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 실력으로 기초 한 10개 정도는 가능하겠지 싶어
딱 10개만 만들어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질문은 온라인 상에서 받기로 하고.
그러던 중 한 분이
“저에게도 메일을 보내주실 수 있나요?” 하시더니
자신이 만든 자료라며 보내주신다.
메일을 받아본 나는
와… 이건 보통 실력이 아닌데?
포어 선생님 수준의 자료였다.
그래서 그분도 꼬셨다.
남미로닷컴에서 포어 강의를 하자고!
3. ‘센스의 포어’ 그리고 헌신
몸이 좋지 않아 지방에 계시다며
자신의 글이 과연 도움이 될지 걱정하시던 분을 설득해,
남미로닷컴 운영자에게
‘센스의 포어’라는 방을 만들게 했다.
3~4개월 동안 정말 온 힘을 다해 강의했다. 역시 익명으로…
센스님은 자료를 만들고,
나는 메일로 보내온 자료에 그림을 넣어 남미로닷컴에 올렸다.
당시는 표준 인코딩이 정착되지 않아
라틴 문자와 특수기호가 잘 올라가지 않던 시절.
글 하나 올리는 데 3~4시간,
때로는 하루 종일 씨름해야 했다.
밤낮으로 자료를 만들다 현훈증으로 쓰러져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말렸지만,
노트북을 병원에까지 들고 가 자료를 만드셨다고 한다.
강의를 시작할 땐 남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976년에 이민 오신 동갑 여성이셨다.
이후 이름이 Cristina Bae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상파울로에 다시 돌아와 사는 센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센스님은 내가 만든 ‘한브뉴스’를
10년 가까이 한인정보방에서
우리 한인들에게 전달해 주는 일을 도우신 고마운 분이시다.
4. 또 다른 온라인 인연들
가만히 보니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 두 분 다
몸이 성치 않으신 분들이었다.
오프라인에서는 더 몸이 힘든 분을 만났다.
한브네트의 미녀짱님이시다.
성이 장씨, 이름이 Mee인 여성분이라
세 가지를 합쳐 내가 붙여드린 닉네임인데
아주 좋아하셨다.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아
6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으셨던 분.
꾸준한 한방치료로 면역기능을 회복해 나가셨고,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내가 사회봉사를 할 때 옆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판데믹 당시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더 곁에서 건강을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남편이신 정선생님께 늘 마음에 남는다.
정선생님은
“한브네트를 하며 아내가 가장 행복해했다”고 하셨다.
또 다른 분, 닉네임 테라님.
늘 지켜보다 꼭 필요할 때 나타나
흔쾌히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늘 고맙고 감사했다.
5. 내가 깨달은 도움의 방향
그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모두 다 이야기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진다.
내가 깨달은 것 하나만 이야기하고 글을 맺는다.
어떤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나를 잘 아는 사람,
나와 가까운 친구에게
도움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가 받은 도움은
늘 내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왔다.
내가 전혀 몰랐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분들이
늘 나를 도와주셨다.
※ 이 글은 ‘브라질 한인 이민 50년’ 연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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