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이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총영사관
브라질 이민사를 이야기할 때 총영사관은 빠질 수 없는 존재다.
한·브라질 외교관계 수립 이후 거의 60년 가까이 총영사관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이민자들의 삶과 함께 기쁨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 준 공간이기도 했다.
이민 초기의 기억, 그리고 변화
이민 초기, 총영사관에 대한 기억은 솔직히 좋지 않았다.
한두 차례 방문했던 당시의 기억 속 총영사관은
‘불친절’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를 만큼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영사관에 다녀오면 기분이 상했다는 교민들의 이야기도 흔했다.
지금 돌아보면 영사들이라기보다는
현지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의 응대 문제였고,
이는 결국 조직 차원의 교육과 시스템 부족에서 비롯된 일이었을 것이다.
약 30년 전부터 총영사관의 분위기는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교민들을 대하는 태도도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고,
전반적인 서비스 역시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부임하는 총영사에 따라
여전히 차이가 있었다는 점도 사실이다.
같은 한민족, 다른 거리감
2000년 이후 삼성, LG 등 한국 기업 주재원 가족들을 치료하며
의외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교포들을 조심하라”는 지침을 받고 왔다는 것이다.
브라질 교포들은 대체로 정이 많고 친절한 편인데,
서로를 경계하며 거리를 두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민자, 공관원, 주재원 모두 같은 한민족으로
해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다른 시선으로 살아가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총영사관의 역할과 현실
상파울루 파울리스타에 위치한 주브라질 한국 총영사관이 입주한 건물.
총영사관의 공식 임무는
대한민국 국민 보호, 영사 서비스 제공,
기업 진출 지원과 문화 홍보, 한인사회 지원이다.
그러나 실제로 브라질에서는
오랫동안 한인 동포 지원이 크게 체감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초기 한인사회가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었고
그 관행이 굳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더 실감난다.
아르헨티나에서 교민회장을 지냈던 분의 말에 따르면
현지에서는 영사관이 교민 활동을 위해
직접 재정 지원을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브라질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판데믹 시기, 총영사관에 대한 실망
판데믹이 장기화되던 시기,
한국 정부는 해외 입국 제한을 단계적으로 완화했지만
유독 브라질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과 함께
입국 제한 국가로 묶여 있었다.
당시 나는 매일 한국·미국·브라질의
감염자 수, 사망자, 백신 접종률을 비교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브라질의 상황은
미국이나 인도보다 오히려 안정적인 편이었다.
이 문제를 질병관리청에 공식적으로 제기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결국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질병관리청뿐 아니라 외교부,
브라질 대사관과 총영사관까지 함께
국민신문고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이후 정부의 방침은 수정되었고
브라질은 입국 제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한인 사회를 대표해야 할 공관의 역할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아쉬움이었다.
판데믹 당시, 브라질 입국 제한 조치의 형평성 문제를 두고
국민신문고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관련 민원은 모두 처리 완료되었다.
다시 멈춰 선 발걸음
몇 년 동안 부모님 얼굴조차 뵙지 못했던 교민들 가운데에는
입국 제한이 풀리자마자 어렵게 시간을 내어
고국으로 향한 발걸음을 옮긴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미크론 변이 발생으로 불과 2주 만에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다시 입국 제한이 시행되었고,
또 한 번 많은 이들의 만남은 미뤄져야 했다.
공백 속에서의 선택
판데믹이 길어지면서 입국 제한이 반복되었고,
검사 기준과 절차는 수시로 바뀌었다.
누구도 명확하게 정리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교민들은 각자 정보를 찾으며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 제한이 다시 생기면서
결과가 빨리 나오는 PCR 검사가 꼭 필요했지만,
당시 검사 비용은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비쌌다.
접근성과 시설, 신뢰도를 고려해
봉헤찌로 인근의 Neugen 검사기관을 선택했다.
한인 이용이 많아질 것을 전제로,
‘Koreabrazil’이라는 이름만으로 할인 적용이 가능하도록 협의했고,
이에 대한 홍보를 약속했다.
그 결과, 많은 교민들이
기존보다 낮은 비용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빠른 검사 결과 덕분에
출국 일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일은 개인이 나설 일이 아니라
총영사관이나 한인회가 먼저 나서야 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 문제에 대해
어느 곳에서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고,
그 공백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에
보다 못해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교계도, 총영사관도, 한인회도
모두가 손을 놓고 있었던 듯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은 분명 많았는데,
왜 그 시기에 아무도 앞에 서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전환점이 된 한 사람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도
반드시 기록해야 할 인물이 있다.
2010년 당시 브라질 총영사였던 김순태 총영사다.
봉헤찌로가 상파울루 시의 법령으로
공식 코리아타운으로 지정된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었다.
김순태 총영사는 부임할 때마다
“임기 동안 이 한인사회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했고,
한국학교, 한인병원, 상권이 이미 갖추어진 봉헤찌로를
제도적으로 한인타운으로 인정받는 것이
한인사회의 다음 단계 성장을 위한 길이라 판단했다.
그 결과, 7개월간의 꾸준한 실무 노력 끝에
큰 장애 없이 시의회 법령이 통과되었다.
이는 브라질 한인 이민사에서
결코 작지 않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기쁨 속에 남은 아쉬움
코리아타운 지정 경축행사에는
브라질리아에서 대사까지 내려오고,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의 한인회장들도 참석할 만큼
의미 있는 자리였다.
다만, 한인 주재 기업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공동체의 성장은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의식의 성숙이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하루였다.
2011년 봉헤찌로 코리아타운 지정 기념 문화행사 – 어머니 합창단.
마무리하며
총영사관은 늘 완벽하지 않았고,
때로는 아쉬움과 실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에 따라,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봉헤찌로 코리아타운 지정은
한 개인의 신념과 실행력이
한인사회 전체의 역사로 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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