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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이민 50년, 한 이민자의 삶을 돌아보다 – ⑰ 위험한 도시에서, 사람이 남긴 흔적

 1. 상파울루에서 한 시간, 쟌지라는 어떤 도시인가

2011년, 쟌지라 선교 현장. 당시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의 기록

쟌지라는 상파울루 중심에서 약 40km 떨어진 외곽 도시다.
차로 이동하면 한 시간 남짓 걸리지만,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범죄와 마약 문제로 악명이 높았던 지역이다.

특히 2010년에는 현직 시장이 살해되는 사건까지 발생하며
쟌지라는 ‘위험한 도시’라는 인식이 브라질 사회 전반에 각인되었다.
이 지역의 많은 청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범죄와 마약을 일상처럼 접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선교와 사회 사역을 시작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2. 출석 0명, 선교의 민낯

임현조 선교사님은 1997년 브라질로 파송되어
1999년 가족과 함께 Jandira에 정착했다.
가정 뒷마당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예배를 드렸지만,
개척 예배 이후 곧바로 맞닥뜨린 현실은 ‘출석 0명’ 이었다.

선교를 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것이라는 기대는
이 도시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쟌지라는 그렇게 선교의 현실을 먼저 보여주었다.


3. 사람을 통해 열렸던 길

전환점은 뜻밖의 사람을 통해 찾아왔다.
현지인 목공업자 Farias의 소개로
미국·캐나다 출신 선교사 부부와 동역하게 되면서
교회는 정착의 계기를 맞게 된다.

아더 목사는 6·25 전쟁 당시 한국에서 군 복무를 했고,
이후 전쟁 고아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교회를 세워온 인물이었다.
그 부부는 브라질에서도 수십 년간
빈민 지역 아이들에게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며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 주는 사역을 이어오고 있었다.


4. 고아원을 꿈꾸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다

임 선교사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브라질의 현실은 한국과 전혀 달랐다.

한국은 6·25 전쟁 이후
수많은 고아가 생기며
‘고아원’이라는 제도가 사회 안에 자리 잡았다.
반면 브라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고아원이 거의 없고,
법적으로는 ‘보호소’ 형태만 허용된다.

브라질리아와 상파울루 인근
São Bernardo do Campo
마리아 수녀회 역시
허가상으로는 고아원이 아닌 보호소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차별이나 학대를 이유로
법적 문제를 제기하는 일도 적지 않다.


5. 사라진 한인 고아원, 그리고 남은 아픔

과거 상파울루에는
한인 목사님들이 운영하던 고아원이 두 곳 있었다.
그중 한 곳은 쟌지라 인근
Itapevi에 있던
은혜의 집 고아원이었다.

은혜의 집 아래쪽,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준비하며 공사가 진행되던 시절의 모습

이곳은 많은 한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정말 많은 후원과 관심이 이어졌던 곳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살아갈 집까지 마련하려 했던
열정이 있었던 사역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곳의 소식은 끊겼고,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실 앞에서
아주 많은 한인들이 가슴으로 아파했다.
그 소식을 전하던 나 역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6. 그가 선택한 다른 길

이런 사례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임 선교사님은 아마도
**‘하고 싶은 일’보다 ‘지금 이 지역에서 가능한 일’**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예전 대화에서,
고아원의 경우 직접 운영하기보다는
시(市)에 위탁하고 그 곁에서 돕는 방식이
아이들을 위해 더 안전할 수 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멀리 있는 이상보다는
지금 눈앞에 있는 쟌지라의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로
옮겨갔던 것이 아니었을까.


7. 사치처럼 보였던 운동, 그리고 변화의 시작

2016년, 범죄와 마약에 노출된 쟌지라의 청소년들과 함께
임 선교사님은 청소년들과 테니스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절 그 아이들에게
테니스는 운동이 아니라 사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몇 자루 되지 않는 라켓으로 시작했고,
닳아버린 그립은
자동차 타이어 안에 들어가는 고무 튜브를
가위로 잘라 감아 사용하기도 했다.

축구밖에 모르던 아이들은
낯선 운동을 통해
서로 규칙을 지키고, 기다리고,
협력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은 자연스럽게 우리 한인들에게 전해졌고,
많은 이들이 조용히 마음을 보탰다.
그렇게 모인 테니스 라켓은
아마도 100~150자루는 되었을 것이다.
매달 테니스 공과 그립도 꾸준히 제공되었고,
이 도움은 2020년 코로나 판데믹 이전까지 이어졌다.

그중 루카스라는 학생은
공부와 봉사에 열정을 보이며 마켄지 신학대학에 진학했고,
그 과정에서 한인들의 뜻이 모인 장학금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변화는 친구들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테니스를 시작하던 시절의 쟌지라 청소년들. 가운데가 루카스.

*이 운동은 이후 시청과 시의회의 관심으로 이어져,
쟌지라 역사상 처음으로 공공 테니스 시설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8. 사람의 성향, 문화, 그리고 말로 할 수 없는 것들

누군가를 평가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다만 곁에서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느낀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임 선교사님은 늘 웃고 대화를 좋아하는 분이었고,
은혜의 집을 이끌던 원장 목사님은
조용하고 과묵한 분이었다.
브라질의 문화는 한국과 다르다.
사람들은 더 많이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며
관계를 만들어 간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요인들이
겹겹이 작용한다.


9. 남는 이야기

삶이 그렇듯, 이런 일도 예외는 아니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노력한 만큼, 마음먹은 대로
결과가 따라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결국 이런 일은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사람의 계산이나 계획을 넘어선
다른 영역에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은
한 선교사의 성공담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배우며 남겨진 흔적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흔적 속에는
함께 마음을 보탰던 많은 한인들의 시간과,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까지 담겨 있다.

— 끝 —

PS. 글을 모두 마친 뒤,
쟌지라의 임 선교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판데믹 이전의 스포츠 선교 사역과
현재 진행 중인 잔지라선교장로교회의 선교 사역에
변함없는 마음으로 동참하며 도움을 주고 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감사의 마음을 정중히 전하고자 한다.


▶ 다음 이야기 예고

이민사회에서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사람과 정보를 잇는 하나의 플랫폼이었다.

그 성장 과정에서 느꼈던 부담과 변화,
그리고 판데믹을 지나며 내가 보았던 아쉬움과 실망
다음 글에서 조심스럽게 풀어보려 한다.

댓글 5개:

  1. 늘 겸손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목사님 사랑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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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샬롬 임선교사님
    선교 영역안에서 할수있는
    일 우리가 행하는 몸짓이 누구를향한 동작일까?
    많은 사람들은 몰라도 한분은 아신다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기를
    위한 몸부림이다
    조롱과 멸시 아유 시기 질투
    신실하신 하나님은 함께 시작부터 현시까지 함께하신다
    등을 토닥 토닥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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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서 묵묵히......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임현조 목사님 가정의 희생과 헌신을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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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선교사님의 소명과 오직 영혼사랑에 주님께서 감동으로 역사하심에 도전됩니다
    올한해도 임마누엘과 가정과 교회가 함께하길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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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랑하는 선교사님
    선교 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시는 목사님께 즌경을 표하며 하시는 사역에 주님의 은혜가 늘 함께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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