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두 노인회의 이야기를 올리고,
그런데 문득, 잊고 지나간 이야기 몇 가지가 있어 이렇게 정리해 올려본다.
15년 전에는 일을 하면서
무엇이 시작이었고, 무엇이 중간이며, 무엇이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예전 자료들을 다시 살펴보며
그 흐름을 비교적 정확히 알게 되었다.
1. 한인회에 들어가게 된 이유 – 재정 확보
서주일 회장이 나를 한인회로 불러들인 가장 큰 목적은
재정 확보와 관련된 일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브라질에 사는 한인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긍지를 가질 수 있을지,
또 어떤 방식으로 노인분들을 위한 봉사를
자발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 가지 고민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재정 확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고,
그 방법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나를 한인회에 앉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효과를 보았고,
많은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1년 치 한인회비를 납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2년간 약 500명 × 350헤알 × 2 = 약 350,000헤알)
이때 처음으로,
‘의지만 있으면 한인사회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2. 한인회보와 사이트들,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확장
이후 한인회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유대인 봉사단체 Unibes를 취재하게 되었고,
그들의 활동이 인상 깊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사람이 “사이트를 만들어 주겠다”고 나섰다.
며칠 뒤, 실제로 사이트 하나가 만들어졌고
그 일을 계기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한인회 재정을 위한 ‘한인지정업소’ 프로그램,
매달 발간해야 했던 한인회보,
한인회 홈페이지,
꼬레아닷컴,
양지노인회 블로그와 어머니 합창단 블로그까지.
일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미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인업소록 제작 요청이 이어졌고,
브라질 한인 인구조사, 이른바 ‘한인 센서’ 제안까지 받게 되었다.
센서를 성공시키려면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업소록 수익 전부를 한인사회에 환원해야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정은 미뤄졌고,
일주일 안에 답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신호는 분명했다.
3. 한계를 느끼다 – 그리고 물러나다
약속했던 시간이 훌쩍 지나
임원 몇 분이 한의원으로 찾아왔지만
여전히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이런 결정조차 못 내리는 구조라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하며
한인회를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고
이대로 가면 오래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지정업소 프로그램 완성
한인회보 발간 비용을 광고로 충당할 수 있는 구조 마련
내가 맡았던 역할은
이미 모두 마무리된 뒤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만두는 결정은 도망이 아니라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4. 꼬레아닷컴과 어르신 컴퓨터 교실
Prates, 416의 한의원 일부를
꼬레아닷컴 공간으로 활용해 시작된 어르신 컴퓨터 교실.
이후 나는 꼬레아닷컴에 집중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컴퓨터 교실이었다.
처음에는 Prates, 416에 있던
한의원의 일부 공간을 꼬레아닷컴 공간으로 활용해 시작했지만,
수강 인원이 늘어나
Rua Ribeiro de Lima의 한국교육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곳에서는 컴퓨터 설치부터 인터넷 환경까지
모두 직접 준비했다.
화·목·토·일, 주 4일
공휴일 없이 1년 내내 이어진 수업에는
어르신과 중년층을 합해
300명 가까운 분들이 함께했다.
판데믹 중 만났던 한 어르신의 말,
그리고 구글 지도 화면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의 얼굴을 마주했던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때 나는
‘기술은 결국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무렵, 브라질에서는
K-pop의 영향으로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인회 엄인경 문화부회장이 찾아와
Prates, 416의 그 공간을
아이들 한글 교육에 사용할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그 공간을 내주었다.
곧 문제가 하나 생겼다.
가르칠 선생님이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을 구해 달라는 요청까지 이어졌다.
결국 선생님을 구하게 되었고,
그 첫 한글 선생님은
다름 아닌 내 딸이었다.
이후 컴퓨터 교실을 위해
우리는 더 넓고 여건이 나은
한국교육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한글을 배우려는 아이들이 크게 늘어나자
엄인경 문화부회장은
“그럼 우리도 교육원을 같이 쓰게 해 달라”고 하셨다. ㅎㅎ
그렇게 한국교육원은
주 4일은 어르신 컴퓨터 강의,
주 2일은 아이들을 위한 한글 수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었다.
그곳은 어느새
세대를 잇는 배움의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꼬레아닷컴 역시
나의 판단 미숙으로 인해
결국 정리하게 되었다.
5. 나의 실수 – 만장일치라는 함정
당시 봉헤찌로에서 벌어지던 범죄를 계기로
호르라기를 나눠 드렸고,
그 과정에서 운영 방향에 대한 갈등이 생겼다.
가장 큰 실수는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로 하자고 했던 것이다.
봉사를 하려는 사람들이니
한마음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정이 책임을 흐리고
갈등을 키운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좋은 의도’와
‘올바른 구조’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6. 한브네트, 그리고 물러날 때를 아는 것
이후 다시 시작한 것이
한브네트였다.
이번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했고
그렇게 10년을 이어왔다.
60세를 앞두고
이제는 물러날 때라 판단해
운영을 넘기고 사이트를 떠났다.
이후에도 요청에 따라
2년 넘게 한브뉴스를 만들어 전달하며
마지막까지 역할을 마무리했다.
7. 남은 깨달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인회와 여러 봉사 활동을 거치며
분명히 배운 것이 있다.
조직은 한 명의 책임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것
리더는 신중하되, 결단할 때는 명확해야 한다는 것
만장일치는 선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을 멈추게 한다는 것
봉사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이 있어야
배는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인단체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 더 분명하게 이야기해 보려 한다.
※ 이 글은 ‘브라질 한인 이민 50년’ 연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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